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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즐기다_드라마] 더 크라운

 

드라마는 195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를 기점으로 시작된다. 아버지 조지 6세를 대신해 영연방 4대륙을 순방하던 엘리자베스는 BBC 뉴스를 통해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슬퍼할 겨를은 없었다. 선왕의 서거와 동시에 엘리자베스는 일국의 군주가 됐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대부분 나라는 혁명, 개헌, 국민투표 등으로 공화제를 채택했다. 현재는 일본, 영국, 스웨덴 등 일부 국가만 군주가 존재한다. 그중 한때 대영제국을 이끌었던 영국 윈저 가문은 세간의 주목을 많이 받는 왕실이다. 드라마 ‘더 크라운’은 이 윈저 가문 엘리자베스 2세의 일생을 다룬 사극 드라마다. 그가 즉위한 1952년부터 해럴드 윌슨이 재선에 성공한 1970년대까지 영국 근현대사를 엘리자베스 2세와 주변 왕실의 일상과 함께 풀어냈다.

흔히 ‘왕’이라고 하면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존재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권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오직 ‘의무감’ 하나로 즉위했다. 혹자가 보기엔 명예스러운 자리일지도 모르나, 통치하지 않는 여왕은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 단지 1,000년 이상 지속된 왕가를 계승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시즌 1에서 대왕대비 메리는 손녀 엘리자베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왕이란 자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자리다. 더 적게 말하고, 더 적게 생각하고, 더 적게 존재하면 더 좋다”

그러다 보니 이 드라마에선 보통의 사극에서 등장하는 정파갈등이나 세력싸움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갈등 요소가 분명 존재하지만, 대부분이 “부계사회 영국에서 여왕과 부마의 자식이 누구의 성을 따를 것인가, 공주와 이혼남의 결혼을 허락할 수 있는가, 왕실 다큐멘터리 촬영을 허가해야 하는가” 등으로, 거창한 주제와는 거리가 멀다.

밋밋한 주제에도 ‘더 크라운’이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탄탄한 시대적 고증 덕분이다. 2차대전이 끝난 직후, 영국은 찬란했던 대영제국의 시절을 지나 자유진영의 주도권을 점차 미국에 넘기게 된다. 영국 외무장관이 미 국무부 로비 소파에서 지쳐 혼자 초라하게 잠든 장면은 과거에 비해 한참 위상이 꺾인 영국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나타냈다. 드라마는 이러한 세심한 표현을 통해 영국 근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이 외에도 수에즈 전쟁, 석탄노조 파업, 베트남 전쟁 등 20세기 영국 역사를 드라마의 배경으로 사용해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

 드라마는 점차 쇠락해가는 영국의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제 사회에서 왕실의 사생활을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 나라의 국왕이자 아내, 어머니로서 엘리자베스는 오직 ‘왕실의 계승’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왕관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이를 통해 드라마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21세기에 ‘군주’의 존재가치는 무엇인가. 최고 권력자로서 아무런 권력도 쓰지 못하는 16개국의 왕이 쓴 왕관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가”

 

김범수 기자  12202998@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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