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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갈증

“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중략)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인용-

 

 

1975년 시인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발표와 동시에 대중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군사독재정권의 강압적 통치로 자유를 잃은 공동체의 분노, 민중의 민주화에 대한 갈증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갈증을 촉발한 군부독재

유신헌법 통과·독재체제 구축으로 대통령 선출 방식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에 의한 간선제로 바뀌었고, 의회의 권한은 제한됐다. 독재정권은 언론 탄압과 더불어 시민들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억압했으며 무고한 민간인들을 체포해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 유신헌법 아래에서 국민들의 자유와 대한민국의 정치·사회 체제는 괴멸된 것이다.

 

1979년 YH사건과 신민당 소속 김영삼의 의원직 박탈로 민주화를 향한 공동체의 목마름은 주체성을 띠기 시작했다. 10월 16일부터 부산, 18일 마산 및 창원지역까지 학생들과 시민들은 공동체의 자유를 되찾고자 대규모 반정부시위를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시민들은 KBS부산방송국과 도청·세무서 등을 파괴했고 파출소로 뛰어 들어간 또 다른 청년들은 벽에 걸려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을 직접 파손했다.

 

정부는 공동체의 갈증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18일에는 부산 지역에 비상계엄령을, 20일에는 마산 및 창원지역에 위수령을 발동해 총 1063명을 연행, 125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자유와 민주화를 향한 갈증을 바랐던 민중들은 군대에게 철저히 짓밟혔다.

 

 

되찾지 못한 물, 해소되지 못한 갈증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공동체의 손이 아닌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쓰러졌고, 그렇게 유신 독재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민주화를 향한 갈증이 해소될 줄 알았던 민중들에겐 더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의 신군부 세력은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군사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의 정권 장악에 맞서 학생들은 1980년 봄부터 대규모 시위를 전개했다. 그러나 전국으로 확대된 비상계엄에 항거해 일어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무력으로 진압됐다. 유신체제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사회로의 이행을 기대했던 국민들의 갈증은 해소되지 못한 것이다.

 

 

갈증의 최고조, 그리고 폭발

“호헌 철폐! 독재 타도!”… 1987년 1월 대학생 박종철이 조사 중 석연치 않은 사고로 목숨을 잃은 뒤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거세 졌다. 하지만 전두환은 4월 13일 공동체의 민주화에 대한 목마름을 무시한 채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지 않는 현행 헌법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가운데 5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조직적으로 은폐된 사실이 폭로됐고, 이어 6월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고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일련의 사건들로 국민들의 갈증은 폭발했다. 6월 10일부터 전국적으로 전개된 민주항쟁은 서울을 비롯한 전국 22개 주요 도시에서 약 24만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참여하며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6월 18일에는 전국 16개 도시 247곳에서 150여만 명이, 6월 26일은 전국 34개 도시에서 130여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국민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결국 전두환 정권은 현행 헌법 유지를 철회했고,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했다. 이에 국민들은 16년 만에 대통령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뽑을 수 있게 됐다. 1972년부터 이어져온 민주화에 대한 갈증을 결국 1987년 민중이 스스로 해결한 것이다.

 

 

반복되는 갈증

1972년 비상계엄부터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얻기까지, 민중들은 오랜 시간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물’을 빼앗은 자들과 투쟁했다. 민주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한 이래로 공동체는 더 이상 목마름을 느끼지 않고 있을까.

12월 12일 쿠데타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탄압 및 비자금 은닉으로 대법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이 최종 확정됐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두 전직 대통령은 구속 2년여 만에 출옥했다.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은 1000억 원 넘는 추징금과 고액 세금도 납부하지 않고, 알츠하이머 진단을 이유로 재판 출석도 거부했다. 작년에는 골프 회동과 호화 오찬으로 논란이 불거졌다.

 2018년 대법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선포했던 비상계엄이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고, 위법해 무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와 함께 당시 계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던 사람들이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갈증의 주범들은 ‘물’을 빼앗았을 때 증식했던 부를 여전히 가지고 있으며 후안무치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주화’라는 목표를 얻어냈지만, 공동체가 갈증을 해결하는 과정을 부당하게 탄압했던 자들은 그들의 잘못을 전면부정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무엇에 목마른가.

 

 

 

 

 

 

 

가시지 않는 갈증

 재물과 명예에 대한 욕구는 사유재산, 계급체계와 같은 형태로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해왔다. 식욕이나 색욕처럼 본능적인 것은 아님에도 더 직접적인 형태로 인간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생리적 욕구와 달리 재물욕과 명예욕은 만족의 기준치가 상대적이다. 목이 마를 땐 물을 마시면 해결되지만 이들은 다르다. 밑 뚫린 독처럼 채우려해도 채워지지 않는다. 물을 항아리로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재물욕과 명예욕의 성질이다.

 

 

갈증을 해소할 기회는 평등했나

 지난 2018년 서울 모 명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입시 비리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해당 학교에 재학 중인 쌍둥이 자매가 교사로 재직하는 아버지에게 미리 언질을 받고 내신 시험에 응시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현직 교사였던 아버지는 혐의를 부인했으나 대법원에서 피고인의 상고가 기각되면서 원심 징역 3년 판결이 확정됐다. 교사의 자녀였던 쌍둥이 자매 또한 부정행위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입시 비리는 학교뿐만 아니라 국가 단위 시험에서도 발생했다. 2016년 유명 L모 강사가 현장 강의 학생들에게 나눠준 유인물이 문제 유출 의혹을 받아 재판에 넘겨졌다. 평가원 6월 모의평가의 대다수 문제와 지문과 더불어 신유형마저 정확히 예측했기 때문이다.

  이후 L모 강사는 징역 10개월로 확정 판결을 받았으며 해당 유출에 가담한 검토 위원도 징역을 선고받았다. 해당 강사가 모의평가만이 아니라 수학능력시험 문제를 유출한 적이 있는지 또 문제 유출이 이번이 처음인지에 대해 여전히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다. 그와 별개로 평가원 검토위원과 담합한 혐의만으로도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많은 충격을 줬다.

  교육제도는 다른 사회 제도보다 더 공정함이 요구된다. 사회 갈등 해소와 계층 이동의 시발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편법을 쓰지 않고 모두가 평등한 위치에서 경쟁하는 것이 교육제도 성립의 전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출세에 대한 갈증을 제도권 안에서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현 사회는 성실한 이들이 내신뿐만 아니라 수학능력시험의 비리까지 목도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갈증을 해소하는 과정은 공정했나

 

  이번 자료는 국세청의 추적조사로 악의적 고액 체납을 발각한 건만 헤아린 것이다. 2019년까지 이들에게 제대로 징수해낸 금액은 1조 7천여억원, 나머지 금액은 형사 고발을 통해 징수해야 한다.

 

 

그렇기에 갈증 해소의 결과가 정의롭지 않았다

  기성의 제도와 방식을 바꾸기 위해선 탁월한 도덕성이 요구된다. 기성의 제도를 비판할 수 있는 도덕성을 지녔는지가 개혁을 밀어붙이는 중요한 힘이기 때문이다. 작년 장관 후보자로 지명돼 사법제도의 강도 높은 개혁과 공정한 형사 절차 시행을 외쳤던 조국은 그래서 낙마했다.

  조국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자식들의 입시 관련 비리, 장학금 부당 수령과 더불어 사모펀드를 통해 부당한 이익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서울대는 교수로 재직하던 조국에게 직위해제를 통보했다.

 

 

합리적으로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물에 대한 갈증이 몸을 지탱하는 것이라면 돈과 명예에 대한 갈증은 우리네 사회를 지탱해왔다고 볼 수 있다. 사욕에 대한 끝없는 갈증은 사회의 발전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다.

  한편으로 물욕과 명예욕은 누구 하나 완전히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부패와 비리는 대체로 사욕 해소를 부당한 방식으로 추구하는 데서 비롯된다. 모두가 채워지지 않는 사욕을 채우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 한다면 더 이상 사회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는 근본적으로 구성원의 신뢰를 바탕으로 성립한다. 사회가 제공하는 기회의 대가와 사회이기에 가능한 협업의 대가를 제도권 안에서 정직하게 지불해야 한다.

  더 높은 자리에 앉을수록 초법적 권한 행사의 기회가 많아진다. 접근하기 쉽다고 그런 기회를 행사하려 해선 안되며 출세의 목적이 돼서도 안 된다. 지위와 재물은 그것을 가진 사람이 사회적 규범 안에서만 권리를 행사할 것이라는 암묵적 약속을 전제로 배분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욕에 대한 갈증은 긍정해야 한다. 하지만 끝없는 사욕을 온전히 긍정하려면 갈증 해소의 기회가 평등해야 하고 과정은 공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낮은 위치에선 정의롭지 않은 결과물을 받아들 때 분노해야 하며, 높은 위치에선 정의로운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법은 나영이에게 등을 돌리면서 조두순에게는 손을 벌렸습니다”

 

  13세 미만 아동을 성폭행한 아동 성범죄자 평균 형량은 5년 2개월에 그치며, 집행유예 비율은 77.5%다. 이러한 암담한 현실을 보여준 대표적 범죄는 ‘조두순 사건’이다. 검찰은 조 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재판부 생각은 달랐다. 재판부는 그가 알코올 의존증 환자였고 범행 당시 음주로 인해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판단해 감형을 선고, 징역 12년 판결을 내렸다.

 

 

  심신미약 상태를 판단하는 기준은 ‘중대한 판단을 내리기 힘든 비정상적 정신상태’다. 그러나 이를 규정하는 구체적인 적용 기준이 없었고, 피의자가 법의 그물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구실밖에 되지 않았다.

 

 

  국민들의 ‘조두순 출소 반대, 재심 요청’ 청원에도 불구하고 조두순은 올해 12월 13일에 출소한다. 게다가 강력 범죄자 신상 공개법 이전의 범죄라서 현재까지도 조두순의 최근 얼굴이 공개되지 않았다. 그가 출소 후 피해자와 100m만 떨어진 곳에서 살아도 현행법상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피해자 아버지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조두순을 찾기 어렵지만 조두순은 우리를 금방 찾아낼 거다. 정말 공포스럽다. 딸이 안심하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결되지 못한 갈증은 피해자를 계속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무려 5년 9개월이 지나서야 304분 살인의 주범들에 대한 수사와 구속영장 청구가 시작된 것이다. 정말 참담하고 씁쓸하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는 전남 진도 해역에서 침몰했다. 탑승객 476명 중 304명이 사망·실종됐고 172명만이 생존했다.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선내에서는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반복됐다.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들을 내버려두고 배에서 탈출했다. 소극적 구조와 정부의 뒷북 대처 등 총체적 문제는 결국 참사로 이어졌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요구한 것은 그저 참사의 모든 의혹을 둘러싼 전방위적 수사다. 박근혜 정부 관계자들의 세월호 1기 특조위 활동 방해 및 세월호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 침몰 전후 국정원과 청와대의 행적 등 밝혀야 할 사실은 아직도 많다. 유족들이 요구하는 수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채 시간은 계속 흐르고, 그들은 여전히 갈증 상태에 있다.

 

  

  “처음엔 무서워서 아예 보지도 못했어요. 그러다 한 달 후쯤 영상을 재생했는데 기겁을 했죠. 한동안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됐어요”

 

 

  지난 2016년 권 모씨는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의식불명에 빠졌다. 이후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연명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숨졌다. 성인 남성의 체내 혈액 총량이 통상 5,000cc 정도인데, 당시 권씨의 출혈량은 3,500cc에 달했다. 권씨의 어머니는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성형외과 CCTV 영상과 의무기록지를 확보했고, CCTV로 확인한 수술 현장은 충격적이었다. 집도의는 빈번히 자리를 비웠고 간호조무사 혼자 지혈을 했다. 집도의가 없는 사이 출혈이 발생하자 그는 대걸레로 바닥에 떨어진 피들을 닦았다. 심지어 집도실에서 화장을 고치거나 스마트폰을 하는 모습이 발견됐다.

 

 

  그러나 병원은 책임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유족은 병원을 업무상과실치사죄 및 의료법 위반으로 형사고발했다. 2월 4일에 열린 첫 형사재판에서 재판부는 간호조무사의 단독 지혈 조치였던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와 의사들의 교사·방조 혐의를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권씨 어머니는 항고했지만 검찰에서는 수사검사의 불기소 처분이 합당하다는 결론으로 기각했다.

 

 

  권씨 사망 이후에도 해당 병원은 홈페이지에 ‘14년 무사고’ 광고를 계속 올렸다. 이는 의료법상 불법인 허위광고다. 유족의 신고로 제재 처분이 가해졌지만 이후 또다시 동일 광고를 내걸었고, 검찰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이렇듯 갈증은 심해질 뿐이었다.

 

 

  유족들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돼야 할 일은 많고 그들의 아픔은 치유되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쯤 그들의 갈증이 시원하게 해소될 수 있을까.

 

 

 

김동현 기자 12192830@inha.edu 

박유정 기자  12182941@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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