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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_영화] 아이히만 쇼

1961년 4월 11일, 나치 친위대 장교로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예루살렘에서 열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아이히만 쇼>는 최초의 TV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재판받는 아이히만의 모습을 담고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 프루트만과 감독 허위츠는 하루 8시간, 장장 6개월에 걸친 재판 과정을 생중계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제작자 프루트만은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세계에 생중계하기 위해 공산당으로 몰려 블랙리스트에 올랐지만 최고의 실력자인 감독 허위츠를 불러들인다. 이들은 판사들에게 촬영 허가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 카메라가 너무 튄다는 판사의 말에 벽을 뚫어 카메라를 눈에 띄지 않게 설치하는 등 철저하게 촬영 준비를 한다. 재판이 시작되고, 허위츠는 다른 어떤 장면들 보다도 아이히만의 얼굴에 집중한다. 이 때문에 ‘세기의 재판을 담은 TV 쇼’를 원했던 프루트만과의 갈등도 겪지만, 감독이 원했던 것은 아이히만의 얼굴에서 그의 실체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기소 죄목을 모두 부인한 아이히만의 얼굴에는 그 어떤 죄의식과 동요도 드러나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한 그는 수용소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을 때도, 처참한 모습의 유대인 피해자들을 담은 영상을 볼 때도 흔들림 없는 표정을 유지했다. 그에게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얼굴’, 즉 악을 보며 동요하는 모습을 포착하길 원했던 허위츠는 그들의 방송이 실패했다는 생각에 잠시 슬퍼하지만, 결코 실패가 아니었다.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이 겪은 아픔을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현재의 우리와 달리 홀로코스트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었기 때문에 나치의 실체를 세상에 공개한 것은 역사를 기억하고 배우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한 셈이다.

 아이히만이 검사와의 공방 끝에 죄를 인정하는 순간 주인공들은 ‘해냈다’고 말한다. 재판에 굴복한 아이히만은 괴물이 아니었다. 흔히 나치 전범자들을 ‘무자비한 악마’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악행은 명령에 따라 일을 수행함으로써 행해진 것이었다. 아이히만도 그랬다. 그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으며 가정에서는 사랑 받는 아버지였다. 인류 최악의 범죄인 홀로코스트를 주도한 인물의 삶은 놀라우리만큼 평범했다. 당시 재판 중계 방송을 지켜본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끝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가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다거나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느낀다면 언제든 제 2의 아이히만이 될 수 있습니다.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코의 모양이나 피부색이나 신을 섬기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증오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히만처럼 이성을 잃고 광기에 휩싸이게 되니까요. 이 끔찍한 만행들이 모두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역사적 소재가 주는 주제의식들은 너무나도 많지만, 이 영화가 가장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우리도 얼마든지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아이히만은 왜 끔찍한 전범자가 되었고, 주인공들은 왜 그의 재판 과정을 방송으로 내보내려 하나? 그리고 우리는 왜 과거를 기억해야 할까? 영화는 계속해서 ‘왜?’ 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 나름의 답을 하고 있다. 우리도 영화가 던지는 근본적이고 심오한 질문들에 답해보는 것은 어떨까.

 

 

 

박정인 기자  12192845@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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