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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즐기다_책] 가만한 나날

 경진은 블로그 후기 마케팅이 주력인 광고대행사에 취업한 사회초년생이다. 경진이 맡은 첫 업무는 N포털에 ‘실내 포차’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블로그 검색결과 1페이지 안에 ‘더진포차’ 맛집 후기가 노출되게 하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첫인상에서 광고 느낌을 주는 리뷰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계적인 문구 말고 상상력을 발휘해 진짜 살아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낼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경진과 그의 동료들은 구체적인 개성을 지닌 가상 인물로 블로그를 꾸며 광고가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게 광고 효과를 내야 했다. 경진은 정성이 담긴 자기소개 글을 작성해 가상 인물 채털리 부인을 블로그 계에 데뷔시킨다.

 경진은 구체성이 리뷰의 생생함을 좌우한다는 생각에 업체에서 보내준 정보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이메일을 보내 추가로 요청할 만큼 열정적으로 근무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프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경진의 1호기 채털리 부인은 초고속으로 최적화에 성공한다.

 그러나 채털리 부인은 무엇 때문인지 ‘저품질’ 평가를 받게 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총 맞았다’고 표현할 만큼 한번 불량 블로그로 분류되면 벗어나기 어려웠다. 결국 경진의 ‘채털리 부인’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경진이 운영하는 가상 인물 ‘채털리 부인’ 블로그로 쪽지를 보내온다. 자신을 B기업의 뿌리는 살균제 피해자라고 소개하며 두 아이 중 갓난아이를 잃었고, 다섯살 아이는 폐가 손상돼 평생 산소 호스를 끼고 살아야 하는 진단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피해자는 채털리 부인이 올린 후기를 보고 제품을 구매해서 쓰기 시작했다며 혹시 무슨 일이 있다면 연락을 달라고 덧붙인다.

 ‘현기증이 일어나는 순간이 있다. 현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인식하지도 못했던 광경이 갑자기 빛을 비춘 듯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낼 때.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고 싶지만, 그조차 허락되지 않을 때,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결국 경진은 첫 직장에서 스물여섯 봄부터 스물여덟 여름 무렵까지 약 26개월간 일하고 퇴사한다.

 취업이 어려운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전공을 살려 직업을 얻는 것은 큰 행운으로 여겨진다. 주인공 경진 또한 자신의 마케팅 관련 전공을 살려 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과연 취업에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한 일로 인해 누군가가 불행해질 수 있다면 과연 그 직업은 잘 선택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가만한 나날>은 사회초년생인 경진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가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보통 우리는 직업을 갖는 이유로 흔히 자아실현과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을 꼽는다. 경진도 마찬가지로 마케팅 회사에서 ‘창작자’라는 소망을 이루고 돈까지 벌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경진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우리가 하는 일은 누군가의 삶에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취업에 성공해 한때 회사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직업을 통해 만족감을 느낄 수 없었던 경진의 사례를 통해 직업윤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길 바란다.

이연진 기자  12182295@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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