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시선] 밝혀져야 하는 진실

 지난달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이춘재가 ‘화성 8차 사건’이 자신의 소행이라고 자백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화성사건을 포함해 모두 14건의 살인과 30여 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한 것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발생한 10차례의 사건을 의미한다. 그중 화성 8차 사건은 199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한 주택에서 초등학생이 성폭행을 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8차 사건에 대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모방범죄라는 결론을 내렸다. 피해자가 논이나 야산이 아닌 집에서 살해됐으며 옷가지로 피해자를 결박하지 않는 등 범행 수법이 다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경찰은 윤 씨를 범인으로 지목해 강간 살인 혐의로 검거했다. 윤 씨는 재판에서 검찰의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형이 확정돼 20년을 복역한 후 2009년 가석방됐다.

 검거 당시 윤 씨는 범행을 인정했으나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자 ‘경찰에게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허위 진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심과 3심 모두 이를 기각했다.

 최근 이춘재가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자 윤 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재심을 준비하고 나섰다. 당시 작성한 진술서에서 윤 씨의 신체적 특징과 맞지 않는 증거들이 나오면서 ‘허위 진술을 했다’는 윤 씨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또한 조사받을 당시 윤 씨가 작성한 자필 진술 조서 중 3차례에 걸쳐 작성한 10장의 진술서 일부가 공개되면서 화성 8차 연쇄살인 사건이 부실 수사였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진술서에는 윤 씨의 필체와 다른 글씨가 쓰여 있어 누군가 대필한 것으로 의심되기 때문이다.

 윤 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그래서인지 윤 씨가 작성한 진술서에서 틀린 맞춤법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같은 진술서에는 초등학교를 중퇴한 윤 씨가 사용하지 않을 법한 ‘주거지’, ‘휴식을 취하고’, ‘국민학교 후문 방향에서’ 등의 어휘가 등장한다. 받침과 조사도 제대로 쓰지 못하던 자필 진술서에 사건 현장을 가기 위한 경로가 고급 단어로 묘사돼 있는 것이다.

 윤 씨의 변호를 맡은 박 변호사는 ‘진술서 작성과정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없지만 경찰이 사건 관련 정보를 불러주거나 보여줘 탄생한 증거라는 사실은 진술서의 형식, 문구, 내용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관계자는 이에 대해 ‘경찰관이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윤 씨를 대신해 자술서를 대신 써준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필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화성 8차 사건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또한 진술서에는 윤 씨가 피해자 집 담을 넘었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윤 씨가 넘었다고 쓴 담은 150cm 이상인 조립식 콘크리트 담이다.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윤 씨가 현실적으로 넘기 어렵다. 윤 씨는 현장검증 당시 담을 넘지 못해 형사들이 양옆에서 부축해준 기억을 하는 반면 당시 수사를 맡은 형사들은 윤 씨가 어렵지 않게 담을 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이춘재가 오래전 기억에 의존해 자백한 만큼 당시 수사자료 등에 대한 검토를 통해 화성 8차 연쇄살인 사건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면밀하게 조사하고 있다. 강압 수사 의혹에 당시 수사팀은 ‘가혹 수사 여부에 대해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경찰 또한 ‘가혹 수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윤 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형사가 3일 동안 잠도 재우지 않았고 그중 두 명은 주먹으로 때리거나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데 쪼그려뛰기를 시키고 폭행을 가했다’고 밝혔다. 윤 씨는 사건 당시 강압 수사를 한 형사들의 공개 사과를 호소하고 있으며 20년이라는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명예회복을 희망하고 있다.

 법원이 윤 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근거는 자백과 체모검사 오직 두 개뿐이다. 이 중 자백은 이미 30년전에 번복했으며 자백 외에 유일한 증거인 체모검사 또한 진위여부를 의심받는 상황이다. 만일 이춘재의 자백대로 화성 8차 사건까지 그의 범행이라면 당시 경찰은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해 처벌한 것이 되는 셈이다.

 물론 아직까지 화성 8차 사건의 범인이 이춘재라고 확실하게 단정지을 순 없다. 그러나 만약 이춘재가 8차 사건의 진범으로 최종 확정된다면 과연 잘못된 수사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윤 씨의 20년은 누가 어떻게 보상해 줄 것인가. 경찰 또한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 억울한 감옥살이를 시켰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범인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연진 기자  12182295@inha.edu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연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