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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톡톡] 다시 날아라 로케트

 본교엔 다른 학교에선 보기 힘든 기념물이 하나 있다. 바로 60주년기념관과 5호관, 본관 사이에 위치한 ‘로켓탑’이다. 이것은 본교 ‘로케트반’이 직접 설계, 제작한 ‘IITA-7CR’라는 로켓을 본뜬 모형이다. 이것을 ‘본교 로켓 발사 기념 탑’ 정도로 볼 수 있지만 로켓탑이 지닌 의미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로켓탑이 세워진 배경을 알기 위해선 1950년대 말 ‘스푸트니크 쇼크’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57년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사건(이하 스푸트니크 쇼크)은 전 세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우주라는 미지의 공간에 인공위성을 발사한 최초의 사례였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로켓 개발에 큰 열의를 보였다. 정부는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우주 공학의 필요성과 군사적 효용성을 인식해 ‘국방과학기술연구소’에 로켓 개발을 지시했다. 이후 인천 앞바다에서 1단 로켓부터 2, 3단 로켓까지 시험 발사에 성공하며 우주 개발에 큰 성과를 거뒀다.

 민간에서도 스푸트니크 쇼크에 흥분한 많은 사람이 로켓 개발에 뛰어들었다. 1958년부터 교수, 학생 사회에선 자체적으로 로켓 연구학회가 조직됐으며 약 2년만인 1960년 11월, 본교 공과대학 소속 로케트반은 시민들 앞에서 1단 로켓 발사 시연에 성공한다.

 당시 본지는 로켓 발사에 대해 ‘한국 로케트학의 부진을 타개하려는 본교가 자력으로 제작한 로케트가 전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켰다‘고 기록했다. ‘우주에 뭔가를 쏘아 올렸다’는 사실에 이끌려 로켓 연구에 뛰어든 본교 로케트반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군의 로켓 시험 발사 성공 이후 1년 만에 민간 로켓 발사가 성공한 것을 보면 민간이 얼마나 로켓 개발에 적극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우주 공학도들을 흥분케 했던 로켓 붐은 1960년대 사회 혼란 속에서 동력을 잃는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은 1962년 로켓 개발의 중추인 국방과학기술연구소를 예산 확충과 전 정권 인사 청산을 이유로 해체한다.

 이 때문에 타국에선 로켓 개발이 주로 국책 사업으로 진행된 반면 한국은 민간 사업으로써 본교 로케트반이 개발을 책임졌다. IITO-1A부터 3A와 IITA 시리즈 그리고 모형탑으로 재현된 3단 로켓 IITA-7CR에 이르기까지 본교는 로켓 개발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64년 IITA-7CR을 끝으로 본교의 로켓 발사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로케트반의 스푸트니크를 향한 꿈은 천천히 관심에서 멀어지다 종단엔 결국 무너졌다.

 1969년 국가차원의 로켓 연구가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정치, 외교 문제가 겹쳐 뒷전으로 밀리는 악순환이 반복돼 표류했고 1958년에 시작된 위성 자체 발사의 꿈은 아직도 이루지 못했다. 한국 우주 공학의 시작을 함께한 본교 로케트반은 스푸트니크를 향했던 흔적을 캠퍼스 내 로켓탑에 쓸쓸히 남겼다.

김범성 기자  12161416@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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