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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의사 출신 변호사, 박성민 변호사를 만나다

서초구의 한 법무법인에서 박성민 변호사를 만났다. 인하대 병원에서 전공의로 일하던 그는 현재 변호사로 근무 중이다. 본교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 그는 사고로 얻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현재 ‘의사 겸 변호사’라는 이름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Q. 자기소개를 해 주세요.

A. 저는 인하대학교 의학과 03학번 박성민이고 현재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Q. 현재 변호사로 일하고 계신데 주로 어떤 업무를 하고 계신가요?

(다른 변호사들과) 특별히 다르진 않지만 아무래도 의사로 일했던 제 배경이 있다 보니 의료사건을 많이 맡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처음부터 의사를 꿈꾸셨나요?

원래는 특별히 비전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입 전 꽃동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목표가 생겼습니다. 저는 임의로 병원에 배정받아 거동 못 하시는 노인 분들의 손발을 닦아드리는 봉사를 했습니다. 어느 날 어떤 할머니의 손발을 닦아드리는데 갑자기 ‘삐삐’ 소리가 나고 의료진이 우르르 들어왔었습니다. 사망하셨다 하더라고요. 제가 손발을 닦아드리는 중에 할머니가 저를 빤히 쳐다보셨었거든요. 저는 그 할머니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분도 저를 모르시는데 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봤던 사람이 저라는 생각을 하니까 그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봉사를 끝내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계속 그게 맴돌며 ‘의사를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어 의대에 가게 됐습니다.

 

Q. 변호사님의 학교생활은 어떠셨나요?

의대는 6년 과정으로 예과 2년 본과 4년으로 나뉘어 있는데 나중에 과를 선택하거나 병원에 지원할 때 제 경우에는 예과 성적은 반영이 안 되고 본과 성적만 반영이 됐었습니다. 그래서 예과 때는 맨날 술 마시고 노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예과 2학년 겨울 방학 때 (사고를 당해) 다쳤는데 그 전까지는 엄청나게 놀아서 유급 위기도 있었고 F를 맞아서 교수님께 빌어서 D0로 올려달라고 하기도 했었습니다. 여느 다른 학생과 비슷한 생활이었어요.

 

Q. 변호사님의 대학 시절 친구 관계는 어땠나요?

다른 대학생들과 비슷했죠. 저는 03학번이니까 03, 04년도에 예과를 지내고 05년도에 다쳤어요. 1년 동안 휴학하고 병원 생활을 했어요. 06년도 3월에 복학하려고 하는데 그때 스키부 동아리 친구들이 자체적으로 후드 티를 제작하고 과 내에서 판매하면서 병원비에 보태라고 모금을 해주고 그랬었는데 (친구들 생각하면) 그게 기억에 남습니다.

 

Q. 대학교 시절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일까요?

연애를 많이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20대 내내 연애를 많이 못 해봐서 계속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나이가 들면 확실히 사람을 보는 시점과 기준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다른 것 없이 정말 그 사람이 좋아서 연애하는 것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20대가 한계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20대와 30대에 연애하는 것은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또 시험 기간에는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Q. 유튜브를 하시던데 채널 개설 과정에 관해서 설명해주세요.

 ‘닥터 프렌즈’라고 의사들이 모여 만든 채널이 있는데 그 중 두 명이 인하대 의대 출신 후배들입니다. 그분들이 그 채널을 처음 시작한다고 할 때 상호나 법적인 문제 관련해서 자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도 ‘변호사들이 모인 ‘로이어 프렌즈’를 결성해 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작가는 따로 없고 저희끼리 상의해서 주제를 정하고 삼각대 세워놓고 촬영합니다.

 

Q. 변호사님만의 공부 비법이 있을까요?

일단 먹고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해야 합니다. 다치기 전에는 저도 학점이 그렇게 좋진 않았습니다. 다치고 나서 몸을 쓸 수 없게 되니 머리로 먹고살아야겠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어요. 공부 동기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또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도서관에 공부하러 가면 꼭 한두 시간 정도는 책상에 엎드려 자고 공부를 시작했어요. 자고 나면 머리가 개운해서 공부가 잘됐던 것 같아요.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잠 안 자고 새벽까지 하면 기억에도 잘 남지 않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남자친구 여자친구랑은 도서관에 가지 마시죠!

 

Q. 변호사님이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면?

끈기라고 할까요?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있어요. 서로의 불행을 비교하는 것과 상관없이 본인이 살면서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은 분명히 올 텐데, 힘들 때 포기하지 말고 계속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다쳤을 때 당연히 힘들었고, 20대 내내 공부를 했을 때도 힘들었는데 지금 이렇게 지나가고 나니까 다 추억으로 남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날이 올 테니까 끈기 있게 살도록 하시죠.

 

Q. 사고 후 장애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이 있나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후드 티를 팔아서 성금을 모아준 친구들도 있었고, 교수님들도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제가 다치고 나서 복학하려고 하는데, 다치고 나니 이 상태로 의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생기잖아요. 그때 모교 출신 교수님들이 먼저 오셔서 본인들이 의사 협회에 가능 여부를 알아보겠다고 하시고 실제로 확인도 해주셨습니다. 또 복학 몇 개월 전에 교수님들이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다니려면 불편한 부분이 많을 텐데 먼저 와서 확인해보고 말해주면 학교 측에 요구해주겠다고 하셨어요. 그때 (장애인) 화장실도 만들어주시고 경사로도 생기고 이것저것 도움을 많이 주셨습니다.

 

Q. 변호사님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요?

사회에 사건이나 어떤 현상이 있을 때 각계각층에서 목소리를 내잖아요. 저도 거기에 목소리를 냈을 때 제 의견이 좀 더 크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습니다. 소위 ‘인플루언서’라고 말하는,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Q. 인하대 후배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최근 이런저런 매체를 보면서 ‘인생 길지 않다. 시시하게 살지 말아라.’라는 말을 봤어요. 어렸을 때는 계속 큰 꿈을 가져야겠다고 생각 하는데 살다 보면 사실 생계의 영향을 안 받기 쉽지 않습니다. 어릴 때는 이것도 해야지 저것도 해야지 하는데 나이 들면서는 어디에 취직해야지, 돈을 많이 벌어야지 이런 생각만 하게 되잖아요. 결국 나중에 꿈이 서울에 집 한 채 사는 것이 돼버리면 너무 시시하지 않나 싶습니다. 좀 더 야망을 품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 멘트 그대로 ‘인생 길지 않다. 시시하게 살지 마라’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인생 길지 않습니다. 시시하게 살지 말고 젊었을 때 연애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또 지금 친구들을 소중히 하세요. 나이를 먹을수록 인맥 관계가 협소해집니다. 그리고 유튜브 구독과 좋아요 눌러주세요!

박정인 기자  12192845@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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