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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고달픈 명절

 세상은 변했지만 어떤 집은 그대로다. 아직도 남자 식탁, 여자 식탁이 구분되는 집이 있겠냐만, 어떤 집은 그렇다. 그런 집을 경험해보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안' 같았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명절을 맞아 온 가족이 집에 모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부엌엔 여자들이, 나머지 공간엔 남자들이 모였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음식이 나오는 줄 아는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거실로 나온 그녀에게 말한다. "딸이 됐으면 부엌에서 일손 좀 거둬라" 그 말을 들은 아들들은 여전히 가만히 앉아 있다.

 부엌은 좁고 덥다. 옹기종기 모여 전을 굽고 나물을 무친다. 초등학생 사촌 여동생이 저도 언니처럼 일하겠다고 부엌으로 들어온다. 자그마한 손으로 동그랑땡에 계란 물을 묻힌다. 고사리 손으로 쥐포에 튀김 옷을 입힌다. 그러면 지나가던 남자 어른이 말한다. "아이고 시집가도 되겠네", "시집가서 일 잘하겠네".

 흐르는 땀에, 밀려오는 짜증에 시원한 거실에서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그'들이 얄미워진다. 그래도 여자라서, 여자니까 그래야 한다고 배웠다. 시집가면 다 하게 되는 거라고, 지금 해두면 시집가서 도움 될 거라고 들었다. 그래서 묵묵히 일했다. 그게 맞는 줄 알았다.

 최근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수도권 거주자 만 19세에서 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명절 인식을 조사해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명절 차례를 지낼 때 남녀의 가사 분담 비중은 여성(77.9%)이 남성(22.1%)보다 월등히 높았다. 아울러 ‘명절이 여성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주는 날이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88.8%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해당 조사의 수치가 모든 사람을 아우를 순 없다. 내 글이 모든 명절을 서술하는 것 또한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명절에, 분명 누군가는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땀을, 누이의 고단함을 말이다.

 당연하게 여겨온 그 관습이 당연한 게 아님을 깨달았을 때 내 엄마, 작은엄마, 큰엄마, 할머니, 내 여동생, 그리고 내가 가여워졌다. 도대체 무엇이 여자들을 좁은 부엌으로 내몰았는가.

 최근엔 이러한 명절에 질린 사람들이 ‘명절 증후군’을 호소하며 전통 명절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 증후군의 정신적 원인으로는 가부장 문화에 따른 스트레스, 시댁 식구와의 관계, 차례 문화로 인한 종교적 불화 등이 있다. 물리적 원인으로는 극심한 가사노동이 대표적이다. 집안 화합을 위한 명절이 되려 화합을 깬다는 부정적 인식에 따라, 지금의 명절을 ‘전통’이 아니라 ‘타성’으로 의식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듯하다.

 명절의 목적은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동안의 회포를 풀자는 것이다. 연휴 또한 일과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에 쌓인 피로를 털어 내자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증후군을 얻게 되고 근육통을 마주하게 된다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사유해야 할 것이 많다. 진정 우리가 바라는 명절의 모습은 무엇일까. 전통을 지키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일까.

서정화 편집국장  12182947@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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