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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팔이] 종이 옷입히기

언어를 배우고 세상의 많은 표현을 익혀가면서 우리는 무한한 상상력을 얻게 된다. 걸어 다니는 길거리에 괴물이 나타나 나만의 세상을 만들었고 자신이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일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하곤 했다. 이룰 수 없는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담으며 작은 방 한쪽 편에서도 행복해 할 수 있었다. 어릴 때의 우리를 떠올려 보자. 나는 나만의 세계에서 공주와 왕자가 되기도 하고 화려한 옷을 걸치고 레드카펫을 거닐고 다니는 할리우드 배우가 되기도 했다.

 

 

이런 무한한 상상력을 실현할 수 있는 작고 확실한 것은 ‘종이 옷 입히기’였다. 나를 대신하는 작고 귀여운 종이 인형은 수십 벌의 옷을 기다린다. 화려한 보석이 잔뜩 달린 드레스부터 알록달록한 구두까지 여러 가지 옷을 직접 오려 인형에게 입혀줄 때 우리는 잠시 세상을 다 가지는 느낌을 받았었다.

 

 

인형 친구에게 완벽한 옷을 선물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가위질은 필수조건이다. 조금이라도 옷이 찢어지면 옷의 가치가 떨어진다. 그래서 최대한 날이 선 가위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방바닥이 종이로 뒤덮이는지도 모른 채 가위질에 열중했다. 완벽한 가위질로 탄생한 옷이야말로 인형에게 입힐 수 있는 최고의 가치였다. 가끔 실수로 종이 인형에게 걸 수 있는 작은 고리 부분을 자르기도 했다. 예쁘게 자른 옷을 인형에게 입히지 못하는 사실에 눈물짓기도 했다. 바닥에 종이 부스러기로 부모님께 혼나기 일쑤였지만 나만의 드레스들을 보면 진짜 내 옷을 가진 듯 행복했다. 예쁘게 자른 옷들은 파일에 넣어 빳빳하게 보관했다.

 

 

수십 벌의 옷을 입히고 액세서리를 걸어주면 마음마저 풍요로워졌다. 이제 우리는 어린이가 아니라 작은 종이 옷으로는 전과 같은 행복을 느낄 순 없지만, 추억은 그대로 남아 있다. 빛바랜 종이 옷을 보면 어렸을 때 행복해하던 자그마한 나를 발견한다. 그 속에서 높아진 행복의 기준을 느낀다. 언제부터 우리의 행복의 기준이 올라갔을까. 작은 종이에도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사뭇 달라졌다. 과시하기를 좋아하고 남의 시선 속에 서로를 가두는 삶을 벗어나 다시 아이처럼 내가 원하는 옷을 잘라 입히고 싶다. 다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순 없을까.

 

신지은 기자  goe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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