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버스를 타고 출근 중, 양쪽 귀에 이어폰 낀 버스기사가 학생 승객의 내린다는 벨소리를 듣지 못하고 정거장을 지나쳤다. 운전 중에 기사가 이어폰을 끼고 전화한다는 것도 기가 막힌 일인데, 정거장을 놓친 이 학생의 반응이 더욱 기가 막힌다. “여기 한번만 세워주시면 안돼요?” 어제 강의실에서 멀쩡한 학생이 나를 또 놀라게 한다. “교수님, 이거 한번만 더 설명해 주시면 안돼요?” 당연히, “여기 세워주세요”, “이거 한번 더 설명해 주세요”이어야 되고, 버스 안에서는 이에 더해, “아저씨, 운전 중에 이어폰 끼고 전화하시면 어떡합니까?”가 내가 젊은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정답’이다.

교정을 걷다 보면, 주변 학생들의 발랄하고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빠져 나도 젊어진다는 마음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밝은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 학생들이 흔히 쓰는 말 중에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들이 있다.

기하학 전공자가 아니라도, ‘부분’은 면적 또는 부피의 한 범위로서 2차원 또는 3차원이며, 0차원인 ‘점’과는 소위 차원이 다른 형태임을 알고 있다. 언제부턴가, 아마도 정치인들의 입에서 시작됐으리라 짐작하지만, 점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부분이라는 말이 나타나기 시작해, 이제는 일반사람들의 대화에서도 정착되었다는 느낌이다. 근래에 “그 점이 잘못되었습니다”라는 말은 들은 기억은 없고, 학교 안팎에서 모두 “그 부분이 잘못되었습니다”이다. 점과 달리 부분은 범위가 넓고 경계가 모호해서, 어디까지, 누가 잘못했는지, 꼭 짚어서 고치거나,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속셈인가. 나이가 들면 그러지 않아도 사리분별이 흐트러지게 되는데, 젊은이들은 일상의 대화에 있어 꼭 ‘부분’을 써야할 일이 아니라면 ‘점’을 쓰기 바란다.

‘지인’은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요새는 초등학교 학생부터 어른까지 지인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쓰이고 있다. 아는 사람, 아는 분 대신에 지인이라 하면 좀 유식해 보이는가. 꼭 한글전용이 아니라도, 아는 분, 아는 사람이 훨씬 부드럽고 융통성있게 들린다.

‘되게’라는 말은 원래 반죽 등에 수분이 적어 뻑뻑해진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이제 말뜻을 강조한다는 의도로 아무나, 어디서나 아주 편하게 쓰이고 있다. “날씨가 되게(매우, 아주, 몹시) 덥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쓰면 결국 표준말이 된다고 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되도록 정상적이고 순화된 말을 쓰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특히 귀에 거슬리는 것은, 하루종일 날씨가 좋았던 날, “오늘 날씨가 좋았다”라 하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늘 날씨가 좋았던 것 같아요”라 하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제 모두 판단불능자가 되어 버렸는가, 아니면 겸손병에 걸려버렸는가. 이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어느 일에서건 자기 말에 책임지지 않겠다는 무사안일의 나약한 심성이 우리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들어서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것이다.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어요(나왔어요)”, “4번 출구세요(출구예요)” 와 같이 사물에 대해 존대말 쓰는 것도 위와 같이 무사안일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바른말이 아닌 줄 알지만, 혹시 문제를 일으키기 싫어서 쓴다는 사람도 있다. 오래된 얘기지만, Fax를 “ㅎ팩스”라 F 발음을 쓸 줄 알지만, 다른 사람 눈에 띄기 싫어서 “팩스”라 말한다는 것 등도, 자신감이 충만하여 우리사회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사람들에게는 바람직하지 못한 언어자세인 것이다.

생각이 말을 낳고, 말은 다시 행동, 그리고 습관이 돼, 드디어는 개인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간단하게 쓰는 말이라 생각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쓸 수 있겠지만, 이러한 말이, 그리고 말버릇이 쌓여 종국에는 자기의 인생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생활태도 특히 사용하는 말이 크게 다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식인이란 오랫동안 자기 전공분야의 많은 지식을 쌓고, 현재 상황을 명철히 분석,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고 이를 실행함으로써 자신이 소속한 사회에 기여함을 본분으로 한다. 이에 더해, 지식인에게 꼭 필요한 덕목으로, 사회의 중요 사안에 있어 선동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들고 싶다. 우리 학생들은 현재, 그리고 장래의 지식인으로서, 개인 그리고 우리 미래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일상의 언어에 있어 선동되지 않고 모범을 보일 힘과 자세를 견지하기 바란다.

인하대학교 생명공학과 구윤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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