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슈팅 게임인 <배틀필드> 시리즈의 신작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출시 전부터 혹평을 받고 있다. 바로 여성 캐릭터와 장애인 캐릭터, 유색인종 캐릭터를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팬들이 차별주의자가 아닌가 싶겠지만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바로 게임의 배경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사실성과 고증을 중요시하던 시리즈로 유명했는데, 갑자기 ‘정치적 올바름’과 다양성, 차별성 명목으로 의수를 단 여군, 방탄모도 쓰지 않은 채 평상복을 입고 일본도를 든 병사 등이 나치 병사를 무찌르는 광경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실제 제2차 세계대전에 최전방에 여군을 투입한 국가는 소련이 유일했고 의수를 달 정도로 영구적인 장애를 입은 병사는 제대했다. 또한 영국은 일본과도 전쟁을 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루는 작품에서 역사적 사실이 외면된 것이다.

개발진의 설명도 팬들의 화를 돋웠다. 디자인 디렉터인 앨런 커츠는 “자기 딸에게 같은 성별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했고 또다른 개발자는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부분을 숨길 수 있는 선택지를 만들어 줄 수 있냐는 한 팬의 질문에 “‘모두를 백인으로 만들기’버튼 위에 둘까요, 아래에 둘까요?”라는 말로 조롱하는 답변을 남겼다. 역사적 사실 고증을 지적하는 팬을 차별주의자로 취급한 것이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개발진의 행동은 전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았다. 영국군은 나치에 맞서 옷과 방탄모를 제대로 착용하고 전투에 임했으며 여성과 장애인은 후방에서 전쟁을 지원했다.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설정을 도입 해놓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집착과 오랜 팬 간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작년에 개봉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 중요 캐릭터를 비 백인에 평범한 외모의 여성으로 등장시키면서, 설정 붕괴라는 비판을 들었다. 특히 이 캐릭터를 비판하는 사람이 차별주의자로 인식되도록 유도했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7~80년대부터 매우 진보적이고 양성평등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했다. 스타워즈에 나오는 수많은 외계인은 다양한 민족과 장애인 등에 대한 은유였고, 악역은 이들을 차별하는 쪽이었다. 그러나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 정작 외계인은 배제됐고 인간 캐릭터 내에서만 다양성을 보여줘 오히려 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에서 퇴보했다는 비판까지 피할 수 없게 됐다.

올해 개봉한 <블랙팬서>는 흑인이 영웅으로 나온다는 점에서 평론가 사이에서 높은 평점을 받았지만, 평론가들이 정작 영화 자체가 아닌 흑인 주인공과 여전사의 높은 비중이라는 설정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줘 비판을 받았다. 영화 팬들은 평론가들이 흑인 얘기만 하고 있고 정작 영화와 관련된 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개봉 이후, 눈에 띄는 혹평은 적지만 단지 흑인과 여성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이유만으로 과대평가를 받은 것 같다는 지적도 많이 보인다.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팬들이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망가지거나 부숴지지 않은 것을 굳이 고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배틀필드> 시리즈의 전작 중에는 주도적인 여성 캐릭터가 주연으로 등장해 호평을 받은 적이 있고 <스타워즈>에는 여러 인종에 비유된 여성형 캐릭터들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장면이 수없이 나왔다.

‘불편함’에서 비롯된 ‘정치적 올바름’ 운동이 또다른 불편함을 낳는다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중문화라는 것은 소비자의 의견도 창작자의 자유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소비자의 갑질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는 명백한 오류다. 소비자는 본인이 원하는 상품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비판할 수 있는 존재다. 그들은 단지 실제 역사를 재현하거나 익숙한 캐릭터의 신선한 이야기, 영화는 영화로 이야기하는 세계를 지키고 싶을 뿐이다.

최창영 편집국장  12163094@inha.edu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