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이 자유로운 사회

요즘 주위에서 말하기가 조심스럽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사회적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혹여 구설수에 오르지 않기 위해서 언행에 대해 자연 조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언행을 조심하고 신중하게 하는 것은 말하는 자의 인격이나 신용과 관련되어 있으니 주의를 하는 것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공자가 교언(巧言)을 비난하며 눌언(訥言)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즘 언행을 조심하는 것은 이와는 맥락이 다르다. 진중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가볍게 농담을 하는 상황이나 아주 일상적인 한담 가운데서 자기도 모르게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말하는 순간순간 자기 검열을 해야 하는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잡담이나 농지거리, 한담은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일상 중 한 부분이다. 뭉쳐진 근육을 풀어주듯 인간의 뇌신경을 이완시켜 또 다시 다음 긴장된 활동을 준비하는 시간이자, 사회의 억압이나 개인적인 심리적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는, 인간의 삶에 있어 불가결한 활동이다. 특히 농담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것을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새롭게 깨닫게 해주거나, 말하기 어려운 비판이나 공격을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각성과 변화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른바 뼈있는 농담은 말할 것도 없고, 한낱 웃자고 하는 소리나 농지거리에도 일상 속에 존재하거나 침묵을 강요당하는 왜곡되고 불합리한 면을 웃음이라는 보호막 뒤에서 폭로하는 언어의 해방적 기능이 존재한다.

이러한 잡담이나 농지거리, 한담에서 중요한 것은 그 내용에 관계없이 사람들이 모두 정신줄을 놓고 들을 수 있는 정신적 이완과 편안함이다. 만약 그 잡담과 농담이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나 주위 사람의 신경을 건드려 곤두서게 만든다면 그 잡담과 농담은 실패한 것이다. 또 타인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말마디마다 자기 검열을 하며 나누는 잡담이나 농담도 실패한 것이나 매한가지이다. 그런 즉 잡담이나 농담을 하는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신중하고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사회는 매우 긴장되고 억압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미투" 현상 이후 일부에서 제기하는 상기와 같은 "압박"은 실은 그 잡담과 농담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나 지켜야 할 경계를 넘어서는 상황이 발생한데에 기인한다. 농담이나 잡담이 사회의 긴장을 완화시키거나 억압적인 불합리성을 폭로 혹은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불합리를 당연시하거나 더 강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감싸주고 권력자에게는 따끔한 일침이 되어야 할 웃음과 농담은 종종 약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조롱과 비하와 같은 언어폭력으로 변질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럴 경우 그 언행의 주체는 대개 악의 없고 의도하지 않은 단순한 "말실수"라고 변명을 한다.

문제는 그러한 말실수가 한두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반복되는 실수는 더 이상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프로이트가 지적한 것처럼 무의식에 깊이 자리 잡고 있거나 의식의 일부인 것이다. 의식적으로 자기 통제를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튀어나올 수 있으니, 요즘 같은 민감한 시기에는 더욱 자기 검열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말실수가 일부 사람들 사이라고 해도 서로 통용될 수 있는 것이거나 함께 긴장 이완제로서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그러한 무의식이 몇몇 개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의식이나 무의식을 이루고 있다는 말해 준다.

신체나 남녀의 성구별에 관한 소재가 한담과 농담거리가 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는 볼 수 없다. 신체와 성구별에 아무런 가치적 판단이 들어있지 않다면 말이다. 그러나 언어를 통한 쾌감이나 유희, 웃음은 그것이 가치적일 때 비로소 가능해 진다. 가치가 균질적일 때 혹은 평등한 경우에도 또한 농지거리가 될 수 없다. 결국 농지거리는 대상들이 가지는 가치가 차이가 있고 우열이 있는 경우에 가능해 진다. 굳이 그러한 차이에 권력권계가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하지 않더라도, 가치의 차이에 의한 사회문화적인 차별의식이 작동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문제가 되는 성, 신체관련 농담이나 말실수가 벌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차별이 지닌 억압성이나 폭력성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다. 그러니 좀 더 편하게 농지거리를 할 수 있는, 대화의 시간이 신경이완의 느긋한 시간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신의 언어에 대한 사전 검열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깃들어 있는 사회적 차별과 그것이 지닌 폭력성을 돌아보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와 문화 속의 차별과 언어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우리의 무의식으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자유롭게 농담을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차태근(중국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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