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문화를 즐기다_영화] 김씨 표류기

영화 ‘김씨 표류기’에는 저마다의 현실 속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표류하고 있는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가 등장한다. 남자 김씨는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실업자가 되고 결국 신용 불량자로 전락한다. 남자 김씨는 자신에게 남겨진 선택이 ‘죽음’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한강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눈을 뜬 그가 맞닥뜨린 현실은 한강의 무인도, 밤섬이다.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안 되는 현실, 그리고 남은 것은 무인도에서의 삶이다. 그는 그곳에서 표류하게 된다. 그는 말한다. “죽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습니다.”

여자 김씨는 외모 때문에 따돌림과 언어폭력을 당하며, 이로 인해 대인공포증에 걸렸다. 그녀는 자신에게 고통이 될 뿐인 현실 세계를 버리고 철저히 본인만 출입할 수 있는 자신의 방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외부와의 완벽한 단절을 위해 창문에 먹지를 붙이고, 좁은 옷장 속에서 귀를 틀어막고 잠을 자는 그녀에게 방문 밖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는 화면 속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 내가 아닌 나를 만들 수도 있는 가상 세계에서 누구보다 빛나는 가상의 본인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의지해 살아간다. 컴퓨터 속 가상의 세계는 그녀의 유일한 도피처이며 곧 섬이다. 그녀는 이곳을 표류한다. 그녀는 말한다. “굳이 방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 간단히 내 것이 될 수 있으니까요.”

자살시도가 실패로 끝나 한강의 밤섬에 불시착한 남자 김씨는 일단 섬에서 살아보기로 한다. 풀을 뜯어 먹고, 열매를 따 먹고, 바닷물을 마시고, 부싯돌로 반나절 만에 불을 피우며 삶을 연명하는 남자 김씨는 물에 휩쓸려온 짜장라면 비닐 속에서 뜯지 않은 스프를 발견한다. 그에게 무인도에서의 첫 목표가 생긴다. 짜장면을 먹는 것. 자신의 방에서 유일한 취미인 달 사진 찍기에 열중하던 여자 김씨는 어느 날 그런 남자 김씨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녀는 밤을 새워가며 망원경으로 그를 관찰한다. 그녀에게도 목표가 생긴다. 그와 대화하는 것. 그와 그녀는 저마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금껏 해보지 않았던-어쩌면 평생 불가능하리라 믿었던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실패를 하고 상처를 입기도 하며 좌절감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맞닥뜨린 현실 앞에 겁을 먹고 지독한 현실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건드려보는 정도에도 상처를 입고 멈춰 섰던 그들은, 그 현실을 손으로 가득 움켜쥐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딛고 일어선다.

억압된 사회 안에서 한없이 나약해진 자신을 바라보며 무력함에 비참해하는 한 남자와 세상에 겁먹고 안으로만 파고 들던 한 여자의 찌질하면서도 코믹한, 그리고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가 있다. 영화는 그래도 괜찮다고, 희망은 있다고 전한다. 깊숙이 숨어 있던 희망을 줄기차게 뽑아내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동안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혹시 지금의 우리는 외딴 섬에서 외롭게 표류하고 있지는 않은가.

임현지 기자  ㅣ.hyeongee@gmail.com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임현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Economic Downturn, Soaring Prices, the Arrival of Global Stagflation
[World Focus]
Economic Downturn, Soaring Pri...
Showing off the value of consumers, ESG Management
[World Focus]
Showing off the value of consu...
The Dissonance Over the Enactment of Nursing Law
[World Focus]
The Dissonance Over the Enactm...
Pro-ana, it's coming.
[World Focus]
Pro-ana, it's coming.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