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파워가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나라는 어디일까. 많은 사람들은 미국을 그 후보로 생각한다. 그러나 2017년 영국 포클랜드커뮤니케이션과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공공외교센터가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위는 프랑스, 2위는 영국이다. 경제력으로나 군사력으로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는 미국은 3위로 내려앉았다.

다들 소프트파워를 외치는 시대다. 그런데 소프트파워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반의 인식과는 달리 소프트파워는 객관적인 지표다. 2004년, 소프트파워를 처음 제창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 석좌교수는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대표되는 ‘하드파워’의 상대개념으로 제도 가치, 문화, 제반 정책이라는 세가지 개념을 소프트파워로 정의했다. 정의를 알고 나면 프랑스와 영국이 미국을 제치고 1, 2위에 오른 이유가 납득이 간다.

지난해 5위를 기록한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에 힘입은 데 반해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 정책으로 외교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은 미국의 순위가 떨어진 것이다. 특히 마크롱과 트럼프의 외교정책은 그야말로 정반대를 달리고 있다. 마크롱은 좌파 정당 소속이고 트럼프는 우파 정당 소속이다. 또한 마크롱이 국내 야당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과거 알제리 식민지배에 사과하고 친EU 정책을 펼치는 데 반해 트럼프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파리협정 등 복수의 국제 협약에서 탈퇴하고, 적대국만이 아니라 EU, 일본, 한국 등 우방국에게도 경제적 압박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프랑스와 영국의 소프트파워는 정치나 외교적 성과가 전부는 아니다. 수백 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유럽 문화의 유산은 21세기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프랑스는 철학, 국제 규약, 프랑스 음식, 클래식 음악 등 소위 ‘고급 문화’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근대적 의미의 민주주의를 제일 처음 이룩한 국가도 프랑스이며, 국제 표준인 SI단위도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 영국의 음악시장은 미국, 일본에 이은 3위이며 힙합과 R&B, 재즈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중음악 장르가 꽃핀 종주국이다. 전세계 스마트폰 프로세서의 과반수는 영국 ‘ARM 홀딩스’에서 설계한 것을 기반으로 한다. 그 외에도 옥스포드 대학, 케임브릿지 대학과 같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이 있다.

아시아 국가 중 가장 순위가 높은 국가는 6위를 기록한 일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는 ‘아니메’와 ‘망가’라는 이름으로 보통명사화 됐고 일반 문학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한국과 중국 기업의 부상으로 빛이 바래긴 했으나 일본 게임은 여전히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다.

한편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21위이다. 낮은 순위는 아니지만 만족할 만한 순위도 아니다. 필자는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저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며 첨단 기술도 선도적인 위치에 있다. K팝은 지속적인 성장세이며 한국 영화는 세계시장에서 최근 일본영화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E스포츠의 경우 한국이 거진 종주국 취급을 받고 있다. 온라인 게임도 상당히 지배적인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북한의 군사적, 외교적 위협과 여전히 존재하는 정치적 불안이 감점요소로 꼽힌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외부의 시선에서는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얼마전 폐막한 평창 동계 올림픽 및 패럴림픽과 남북, 북미 정상회담 등은 외신에서도 분명 호평을 받았다. 이러한 대외적인 성과가 소프트파워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핵무기가 등장하고 세계화 물결 속에서 군사적, 경제적 대립의 힘이 약해지는 시대에, 진정한 경쟁력은 소프트파워에 있다. 백범 김구는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부력(富力)과 강력(强力)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나이 교수가 제창한 ‘소프트파워’의 정의와 거의 일치한다.

최창영  12163094@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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