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하십니까? 강성대 기자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있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를 줄인 말이다. 최근 기업들이 이공계 전공자를 우대하는 경향이 뚜렷해지자 많은 문과대생이 SNS 등에 이와 같은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문과생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이과를 자연과학과 응용과학으로 나눌 수 있는 것처럼, 문과 또한 인문학(이른바 문학과·사학과·철학과)과 사회과학(경영학, 정치학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경영학이나 정치학 같은 실용적인 면을 도입한 사회과학도들은 그나마 취업 일선에서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한다. 따라서 문과에서 '문송'을 외치는 이들은 대게 인문학도들이다.

최근 취업불황 속에서 걱정이 많아 ‘잠을 자는 것조차 힘들다’라고 하는 문과생들의 현실은 어떨까.

취업할 때 정말 문송합니까?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상반기 신입사원을 채용한 기업 153개사를 대상으로 '신입사원 합격 스펙'을 조사한 결과, 상반기 신입사원 전공은 이공학 계열이 평균 42.6%의 독보적인 비율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상경계열(21.5%), 인문·어학 계열(13.7%) 등의 순이었다.

이러한 인문계 취업난은 명문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2014년 소위 SKY라고 불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인문·사회계열 졸업생 3명 중 1명이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한 대기업은 2014년부터 인문계 졸업생에게 서류전형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취업할 때만이 아닌 취업 후의 상황도 ‘문송’했다. 지난 10월 한국직업 능력개발원이 발표한 '청년층의 고용형태 변화와 영향 요인 분석' 자료에 따르면 취업자 920명 중 공학 계열 전공자의 정규직 취업비율은 93.7%에 달했다. 반면, 인문 계열 전공자의 정규직 취업비율은 72.5%에 불과했다.

임금 차이도 컸다. 인문·사회계열 졸업자의 첫 일자리 월평균 임금은 비정규직이 139만 원, 정규직이 182만 원이었다. 이에 비해 공학 계열은 비정규직 153만 원, 정규직 207만 원으로 모두 높았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고등학생들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5학년도부터 2016학년도까지 12년간 대학수학능력시험 채점 결과에 따르면 이과 수험생은 3만5547명 늘고 문과 수험생은 1만6604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1년간 중학생의 고교 선호도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문과 계열인 외국어고등학교에 대한 수요도 줄어들었다. 2006년 외국어고등학교 선호도는 40.3%였으나 올해는 19.1%로 절반 이하로 하락한 모습을 보였다.

현대 사회에서의 인문학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자본주의 관점에서 인문학은 비실용적인 학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인문학이 경시되고 인문학적 성찰이 부재한 사회가 형성되고 있다. 동아대 인문역량강화사업단장 박은경 교수는 인문학에 대해"저는 '인문학의 위기'를 넘어 '인문학이 뇌사 단계다'라고 말해요. 그만큼 대학에서 인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학생들은 기본 교양이자 기초학문을 외면하죠”라 표현하기도 했다.

대학도 다르지 않다. 지금의 대학은 취업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상명대학교는 지난해 입학한 신입생부터 취업 진로팀에서 개설한 교양과목을 반드시 한 과목 이상 이수하게 했다. 취업 진로팀에선 '취업정보분석 및 입사전략', '스피치와 프리젠테이션', '직무적성과 자기계발' 등 과목을 개설해 지원서 작성부터 직무적성검사, 면접 대비방식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또한, 기업과 대학이 연계한 ‘온디맨드(On-demand) 학과’도 생겨나고 있다. ‘온디맨드(On-demand) 학과’란 졸업생의 원활한 사회 진출을 위해 기업과 정부의 수요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는 학과를 뜻한다.  △한양대의 미래 자동차공학과 △고려대의 사이버국방학과 △한국외대의 LD 학부와 LT 학부 △숙명여대의 영트러프러너십 △숭실대의 소프트웨어 학부와 스마트 시스템 소프트웨어학과 등의 학과가 대표적인 ‘온디맨드(On-demand) 학과’들이다.

정부에서도 인문학을 외면하고 있다. 정부는 프라임 사업을 통해 각 대학에 이공계 교육을 장려하고 있다. 프라임 사업은 산업 수요에 맞게 정원을 조정하는 대학에 2016년부터 3년간 총 6,000억 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즉 인문·자연·예체능계를 줄이고 취업이 잘 되는 이공계를 늘리는 형식이다. 프라임 사업은 청년 실업률 증가로 산업 수요와 대학교육 간의 맞지 않는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마련된 특별 조치다. 본교도 올해에 프라임 사업 신청 과정에서 진통을 이미 겪은 바 있다..

기업에서도 인문학의 위상은 다르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 10곳 중 6곳이 이공계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향후 10년간 노동시장에서 공학 계열 대학 졸업자에 대한 수요는 133만7,000명인 데 비해 공급은 105만9,000명으로 27만8,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인문사회계열 졸업자 수요는 147만6,000명이지만 공급이 153만7,000명에 달해 6만 명 정도가 초과될 것으로 예상했다.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

이윤창출이 목적인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라고 한다. 기업은 비실용적 학문인 인문학을 왜 원하는 걸까. 이는 인문학이 결국 이윤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즉 인문학을 통해 인간에 대한 본질, 습성, 생각을 이해함으로써 좀 더 인간이 원하는 것에 접근할 수 있기때문에 기업은 지원자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과 기술을 연관시킨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는 “직관적이고, 사용하기에 재미있고, 더불어 사용하기 쉬운 제품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늘 과학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가 아이패드와 같은 창조적인 제품들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가지 요소들의 결합 덕분이었다”라며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 코웨이 니켈 논란 등을 생각해보면 답은 명확하다. 인문학은 인간의 조건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인, 인간 전체에 대한 사유를 통해 이뤄진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직원이 타인에 대한 존중을 기저에 두고 판단을 했다면 이런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기업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원한다.

그러나 기업이 원하는 인문학적 소양과 실제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은 차이가 있다. 인문학은 신기술 개발이나 경영전략 같은 방법으로 일반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거나 기업의 이윤을 만들어내지 못 한다. 이는 기업에서 인문학도의 채용을 꺼리는 이유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의 창출이지 윤리의 준수가 아니다. 기업은 인문학 요약본 한 권을 읽고 인문학적 표현을 도입해 회사를 성장시킬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당사자들에게 ‘문송’에 대해 묻다.

문과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A: 문과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수학을 하기 싫어서였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무리 공부를 해도 다른 과목과는 달리 수학 성적은 오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수학에 대한 머리가 없나 보다’고 생각하고 수학 비중이 적은 문과를 선택했어요.

B: 저는 예전부터 꿈이 소설가였어요. 그래서 ‘한국어문학과’가 있는 문과를 지원했어요. 소설을 읽고 쓰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이과보다는 문과가 낫다고 생각했거든요.

현재 선택하신 과에 대해서는 만족하시나요?

A: 솔직히 말하자면 만족스럽지는 않아요. 많은 학우가 그렇겠지만, 저는 학과를 선택할 때 수능 성적에 맞춰서 선택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공부를 하다 보면 내가 이것을 배우기 위해 고등학교 때 공부를 한 것인지 자괴감이 들기도 해요.

B: 저도 제 기대와 다른 수업에 처음엔 당황했어요. 제 꿈이 소설가인 만큼 소설 관련 수업만 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입학했지만, 현실은 달랐어요. 물론 문학과 관련한 수업도 있었지만, 단어 혹은 한국어 말소리에 대한 분석, 한국어의 문장구조 등 관련이 없는 수업도 들어야만 했어요. 그렇지만 지금 아니면 못 배울 것을 배웠다고 마음을 바꿔서 생각하니 괜찮은 것도 같아요.

‘문과로는 취업하기가 힘들다’는 말이 많은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A: 크게 공감이 되는 말이에요. 지금은 3학년이지만 당장 내년부터는 취업을 걱정해야 하는 4학년이 되니 걱정이 많이 돼요. 주변에서 그리고 미디어와 언론에서 항상 ‘문과는 취업하기 어렵다’고하다 보니 걱정이죠. 주변 선배 중에서도 졸업을 미루시고 계신 분이 많아요. 저도 그분들을 볼 때마다 저의 미래 같아서 슬퍼요.

B: 저는 꿈이 소설가다 보니 취업에 대한 큰 걱정은 없어요. 다만 소설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성공을 할 수 있을지를 모르다 보니 미래에 대한 걱정은 있죠. 다만 저도 주변에서 ‘문·사·철은 취업이 힘들다’라는 말을 하도 듣다 보니 막연히 고민은 돼요.

취업을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요?

A: 이번 방학을 맞아서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볼 생각이에요. 토익과 토스를 준비해서 남들보다 앞서지는 않아도 뒤처지지는 않기 위해 노력하려고요. 그래도 고민은 많아요. 남들은 이미 토익과 토스를 끝내고 제2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아직도 영어에 쩔쩔맨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요.

B: 저는 만약을 대비해서 교환학생을 갔다 올 생각이에요. 친구들을 만나보니 해외에서 오랫동안 있다가 온 친구들은 외국어 실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향상돼 있더라고요. 물론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이지만 혹시 모르니 대비책은 마련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성대 기자  1213315@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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