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동구 만석동에 위치한 괭이부리마을 전경. 서동령 기자

인천역 근처에는 김중미 작가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된 만석동이 위치해있다. 만석동의 별칭인 괭이부리마을이란 이름의 유래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현재의 마을이 있던 자리는 과거엔 갯벌로 이뤄진 바닷가였다. 바닷가엔 고양이(괭이)같은 울음소리를 내는 갈매기가 많이 있어 고양이섬(괭이섬)이라 불리는 섬이 있었다고 한다. 1930년대 이 일대 바다가 매립되면서 괭이부리마을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고 한다.

예부터 이 마을은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달동네로 알려졌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내가 찾은 만석동은 아파트와 주택이 들어선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최근 몇 년 사이 재개발이 진행돼 판자촌의 상당수가 현대식 주택으로 바뀐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직 괭이부리마을의 쪽방촌은 고층아파트와 현대식 건물 사이의 그늘에 가려진 채 남아있었다.

괭이부리마을이 처음부터 쪽방촌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 일대는 조선시대 때만 해도 주민이 20~30가구밖에 되지 않던 작은 마을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이 지역에는 일본의 중국 침략을 위한 군수품 공장이 건설됐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마을 일대엔 많은 공장들이 남아있다. 마을 쪽방촌의 시작은 7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전쟁 직후, 삶의 터전을 찾아서 온 피난민들은 이곳 만석동에 자리를 잡았다. 가진 것 없던 피난민들은 나무로 얼기설기 지은 판자촌을 유일한 보금자리로 삼았고, 이런 무허가 주택들이 모여 괭이부리마을이 만들어졌다.

오랜 세월이 지나 동네 안의 판자촌 상당수는 사라졌지만, 아직 화도진로 주변으로는 허름한 가옥들이 늘어서 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건물 외벽은 금이 가 있어 과연 이 집들이 추운 겨울바람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거리에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두꺼운 겨울옷을 입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만석동의 얼마 남지 않은 쪽방촌에 거주하는 주민들인 것 같았다.

마을의 골목을 걷던 중 ‘행복이 있는 화장실’이라고 쓰인 공중화장실이 눈에 띄었다. 번듯하게 꾸며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던 나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평범한 주거지 한복판에 왜 공중화장실이 있을까. 주변에 늘어선 쪽방촌의 거주환경을 생각해보니 답을 알 수 있었다. 공중화장실은 변변한 화장실이나 수도시설이 없던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시설이었다. 몇 평 남짓한 집에서 거주하던 주민들에게 공중화장실은 소중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괭이부리마을 안에는 주민들을 위한 공중화장실이 있다. 서동령 기자

화장실을 나와 골목길을 기웃거리던 내 눈에 연탄이 보였다. 우리들에게 연탄이란 이미 난방의 도구로서는 잊혀져가는 역사의 산물이다. 내게 연탄은 친구들과 가는 식당 메뉴판의 ‘연탄불고기’에서나 접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선 아직 연탄이 주된 난방도구로서 사용되고 있었다. 아직도 많은 봉사단체들이 연탄나눔을 위해 만석동에 찾아온다.

최근 이 마을은 가난한 마을이라는 이유로 상처를 입은 적이 있다. 인천 동구청이 괭이부리마을에 쪽방촌 체험관을 설립하려 했기 때문이다. 쪽방촌 체험관은 마을에 위치한 2층짜리 빈 주택에 건립될 예정이었다. 동구청은 빈 주택을 60~70년대 생활공간으로 꾸며 참가자들이 참가비를 내고 마을의 삶을 체험할 수 있도록 계획했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이제는 가난까지 상품화하려 하느냐’며 반대 운동을 벌였고, 결국 이 체험관 계획은 무산됐다. 가난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온 주민들에게는 실로 아픈 상처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최근 동구청은 만석동 일대를 ‘청사초롱 마을’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만석동 제물량로와 어촌로 등을 중심으로 청사초롱을 주제로 한 벽화를 꾸미고 한옥을 지어 전통주막을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기존 주민들의 삶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를 들며 계획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좋은 관광지가 조성된다 하더라도 사업은 실제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을 고려해 조심스럽게 이뤄져야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괭이부리마을에는 가난이 깊숙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마을 한편에선 따뜻한 사람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삭막한 색깔의 시멘트벽 대신 알록달록한 벽화가 그려진 곳이 있었다. 벽화에는 동물들과 물고기 등 다양한 그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난달 인천도시공사 직원 100여 명이 봉사활동을 통해 그린 것이었다. 또한 마을 안에는 ‘우리미술관’이라는 아담한 규모의 미술관도 자리 잡고 있었다. 유명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된 다른 미술관들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사람들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사실 만석동은 내가 처음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할 만큼 역사가 깊은 달동네라고 하기엔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또한 주변의 고층 아파트들과 주택들로 인해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어보였다. 그러나 마을의 역사자료를 찾아보며 지금의 만석동은 예전의 마을과는 상당히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90년대 1,000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최근엔 무주택자를 위한 보금자리주택도 들어섰다.

옛날의 만석동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수의 쪽방촌이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마을이 개발됐다고 해도 여전히 쪽방촌은 남아있다. 만석동 9번지를 중심으로 늘어선 집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고, 세월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낡은 벽들은 ‘이곳이 바로 쪽방촌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쪽방촌 골목 사이로는 우뚝 솟은 아파트가 보였다. 우리 사회엔 아직 괭이부리마을 주민들을 위해 해결해야할 숙제가 많이 남아있었다.

서동령 기자  seodongry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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