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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그들이 말하는 탈북

 이 기사는 새터민의 북한에서의 생활상부터 탈북을 한 현재까지의 삶을 실화 바탕으로 각색한 소설형식 입니다.

 “아새끼, 얼티디마라(정신 잃지마라). 남조선에 가닿으면(도착하면) 밥걱정은 안하지 안캈어? 여서(여기서) 굶어 뒤지고 싶네?” 북한 땅을 뜨기 전 하신 아버지의 말씀이 그들의 귀에 아른거린다. 그렇게 그들은 고향과 조국을 등진 채, 남한에서의 삶에 대한 희망과 불안감을 안고 압록강을 건넜다.

 탈북자들의 출신인 함경북도, 평안북도 일대. 이곳은 한반도 최북단에 위치한 곳으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과 인접해있다. 이곳의 생존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극심한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주민들은 매일 생명의 위협과 싸워야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의철(가명·당시 17)은 성인인데도 키가 160cm가 채 안되는 신체를 지녔고 어린 시절 가족으로부터 받아야할 사랑이나 온정을 누리지 못했다. 때로 두만강을 건너 탈북을 시도하다 잡히는 사람을 처형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당시 어린 의철에게는 잊을 수 없는 정신적 트라우마로 작용해 탈북은 생각 할 엄두조차 못냈다.
 그러던 어느날, 야밤에 아버지가 뒤척거리며 짐을 분주히 쌌다. 항상 고요히 숨죽이며 자는 평소와의 새벽과 달리 그날은 분주히 움직이는 것이 의아했던 철이는 아버지께 물었다. “아바이 지금 모하는 기요?”
“날래 준비하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안캇니. 남조선으로 가는기다” 남조선, 농담이라고 하기에는 아무래도 아버지의 표정을 보아하니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철이는 이내 얼마 전 탈북하다 총살당한 이웃 주민을 생각하며 두려움에 부르르 떨었다. “아바이..붙잡히면 다 죽는거 아니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의철의 뺨으로 아버지의 손날이 세게 치고 들어왔다. “아새끼, 얼티디마라. 남조선에 무사히 가닿으면 하면 밥걱정은 안하지 안캈어? 여기서 굶어 뒤지고 싶네?”
 그렇게 의철의 가족은 압록강을 건너 탈북을 시도했다. 압록강을 빠져나와 삼양에서 첫 번째 브로커를 만났다. 중간 단계별(정조우-쿤밍-라오스-태국)로 다음 행선지를 전해 들었고 각각의 브로커들에게 알선됐다. 그렇게 10여 명의 탈북자들이 그룹을 지어 야밤을 틈타 중국 대륙을 횡단했다. 일행 중에는 임산부도 있었다. 그들은 걸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계속 걸었다. 들키지 않고자 산을 통해 수백 킬로나 되는 거리를 나아갔다. 그러나 그 과정  또한 순탄치 않았다. 북한을 빠져 나온 것만으로 다행이라는 착각은 거기까지였다. 중국 곳곳에 북한의 감시가 있었고 목숨의 위협도 있었다.
 그렇게 라오스까지 도착한 의철. ‘타당 타당’ 라오스로 넘어가는 국경지대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의철은 어렵게 중국대륙을 건넜는데 여기서 죽는 것은 아닌지 무서워서 앞을 볼 수 조차 없었다. “아바이 무섭습네다..” 의철이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이자 아버지가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 보였다. “쉬ㅡㅡㅡㅡ잇” 그렇게 그들은 총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모두 숨죽여 엎드려 있었다.
 그렇게 죽을뻔한 고비를 넘기고 나서, 숨 돌릴 틈도 없이 의철은 태국으로 향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행 중의 임산부가 도중에 발목을 다쳐버렸다. 의철의 아버지는 본디 강한 사람으로, 그녀를 업어가며 탈출을 강행했다. “동무, 조금만 힘내라..여기서 듁으면 억울하지 안캈어? 뱃속에 아이를 생각하서라도 꼭 살아남으라”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의철의 아버지께 감사해 했다. “아주바이 감사합네다...감사합네다...”
 의철과 가족들은 우여곡절 끝에 태국에 도착했고 그들은 유치장으로 송치됐다. 이는 그들의 안전을 위함이었다. 태국 경찰은 태국의 한국대사관에 연락을 취했고 이들은 대사관에 인도됐다. 한국대사관은 다시 정부와 국정원에 연락을 취했다. 이 시점부터 정부는 탈북자들에 대한 항공과 비용, 모든 안전을 보장했다. 사상자 없이 남한에 무사히 도착했고 그들은 공항에 내리자마자 큰 충격을 받았다. 중국을 통해 접하던 드라마의 모습과 북한 정부가 전달하는 것과는 큰 괴리감이 있었고, 정보가 통제된 상황에서 어느 것이 사실인지 불확실·불명확 했으며 막연하기만 한 탈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야 의철의 마음 한 켠에는 안도감이 자리할 수 있었다. ‘적어도 여기에서는 끼니 걱정을 안해도 된다...’ 의철에게는  무엇보다도 그 생각이 가장 컸다.
 국정원은 1개월 간 그들을 포함한 탈북자들을 조사·감시·취조 했다. 간첩인지 아닌지, 어떤 목적으로 탈북을 했는지 알아봤다. 아이들은 비교적 양호한 정도로 진행돼나 어른들은 그 강도가 고문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했다. 의철은 힘들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런 아버지는 역시 강했다. “어떻게 온 남한인데..”하며 견뎌내는 모습은 의철을 눈물 짖게 했다. 심도 높은 취조 이후, 그들은 3개월 간 하나원에서 남한 사회 및 역사에 대한 개략적인 교육을 받으며 현 남한사회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현재 통일부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한국에 입국한 북한 이탈 주민(탈북자) 수는 2만8000여 명에 달한다. 통일부가 밝힌 탈북자 입국 현황을 보면, 현재까지 국내에 입국한 여성 탈북자는 전체 탈북자의 약 80%를 차지했다. 탈북자들은 정부로부터 5년 간, 매달 기초생활수급자와 비슷한 정도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가며 살아간다. 정부는 또한 거주 가능한 지역의 임대주택을 제공한다. 의철이네는 올해로 마지막 지원이다. 어느새 남한에 내려온 지 벌써 5년째다. 의철이는 천주교재단에서 제공하는 기숙사, 소위 쉼터라 불리는 곳에 살고 있다. 그는 현재 서울 명동에 위치한, 새터민들이 다니는 여명학교에 재학 중이다. 고등학교 3학년으로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한 상태다. 그는 “안전한 대한민국에서 배고픔의 걱정을 덜고 하루하루 감사하게 산다. 하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힘들었지만 그렇다. 힘든 것이 있다면 남한 사람들이 탈북자에 대한 편견과 시선들이다. 대학에 가서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학업은 따라갈지 걱정이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사회복지학과에 지원했고 인정을 베풀며 살고싶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경상도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중이며 따로 떨어져 산다고 한다.
 처음부터 그의 남한생활은 기대한 만큼 평탄하지가 않았다. 우선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의철이는 말이 서툴렀고 한글을 잘 몰랐다. 또한 한국에서는 영어와 외래어가 많이 혼용되다보니 무슨 말인지 지금도 어려워한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낯선 시선을 보냈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 등이 어려웠다. 아버지는 처음 일자리르 구하기 어려워 매일 술을 마시곤 했다. 기자와의 연은 이러한 부분과 심리적 안정을 되찾아주도록 도와주는 교육봉사에서 시작된 것이다. 주로 학교에서의 탈북학생들하고만 교류하다보니 남한에서 살고 있고 같은 민족이라고는 하지만 이방인이 된 기분을 감추지 못한다. 의철이의 경우는 다르지만, 많은 탈북자들이 이러한 것과 관련해 남한사회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고 각종 범죄에 연루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동시에 분단 70주년인데 이념의 무서움을 남한에 와서야 강하게 느낀다. 나의 지난 17년 인생은 무엇이었나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한다. 이어 “통일은 반드시 완수해야할 국가적 과제인데 탈북해 남한으로 내려 오고있는 새터민에 대해서는 남한 사람들이 아는 바가 적다. 미래 통일을 준비하는 입장으로서 이제는 한국 사회의 일원인 탈북자들에 대한 이해를 해야, 보다 원활한 통일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남한사람들의 인식전환과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강화되길 소망하고 있다.


 

이상우 기자  57sangwoo@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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