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은 교육부와 언론사들의 각종 평가에 시달리고 있다. 그 평가 척도에 따르자면, 교수들은 논문을 제작하되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발휘하여 가급적 많은 논문을 제작하여 내어놓는 기계들로 전락해 가야 한다. 경직된 기계정신에 굴복해야 하는 노예의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리하여, 이제, 대학의 광장에서, 자유를 노래하는 시가 창작되고 낭송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낡은 몽상에 불과한 것처럼 들리며, 대학은 다양한 창의력과 상상력이 협력하는 공동체의 광장이 아니라, 대량생산 레짐을 향한 논문제조공장인 듯하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 보듯이, 철저하게 분화된 공정 속에서 자신의 고립된 영역 속에서 부속품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 전체와 그 의미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못하게 한다. 상부에서 하달하는 관료주의적 명령을 실행하는 수행자들로 전락해 간다. 이론적 지식과 상상력과 협력이 중요한 후기산업사회 시대에서, 시대착오적 역행이다.
 학문공동체는 죽어가고 있다는 비명이 들리고, 공동체 정신은 숨을 헐떡거리고 있다. 공동체 정신은 그 공동체 가치를 지켜가려는 구성원들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라는 희생의 거름을 먹고 자라는데, 광장에서 대화하고 발언하는 자들이 사라진 지 너무도 오래된 나머지, 참여 지평은 아득하기만 하다. 구성원들 사이에 우애는 신음하고 있다.
 몇몇이 어두운 구석에 모여 냉소와 독설을 뱉으면 그 옆에 가래와 침을 보태는 냉소주의자들이 늘어가고 있고, 사적 공간에서만 사적인 분노를 일으키는 것으로 대리 만족하는 사적카타리스트들도 늘어가고 있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들어 일탈하는 패배주의자들도 늘어가고 있을 것 같고, 이 모든 것들에서 얼굴을 돌리고 외면하고는 고립에 빠져드는 고립주의자들도 늘어가고 있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의 경제적 손실이 일어나는 이 현실에 먼저 저항하는 자들을 기다리다가 떨어지는 과실을 먹고자 하는 이기주의적 무임승차자들도 있으며, 공동체 가치와 정신과 위배되지만 이 경쟁에서 자신의 실력은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여 순응하는 체제주의자들도 있다. 이들 모두 각기 자신의 골목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방안으로 들어가고, 공동체의 광장은 텅비어 있다. 그들이 빠져나간 그 골목 길들, 모퉁이들에서 불어오는 비바람들에 허무와 패배를 재촉하는 검은 비닐봉지들만 뒹굴고 있을 따름이다.
 탈현대 철학자 리오타르가 “지식인의 종언”을 진단했을 때 염두에 두었던 것은 “보편적 이념의 쇠퇴, 심지어는 그 몰락”을 비판은커녕 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었고, 보편적 이념은 전체주의적 관념의 다른 이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보편적 이념을 추구하는 지식인의 몰락을 위해서 보편적 이념의 지식인들을 비판해야 하는 대항지식인의 책임의식과 그 수행을 그의 주장 밖에서 촉구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닫힌 보편적 이념의 시대를 완전히 끝내고, “지식인의 무덤”에 침을 뱉기 위해서일지라도, 광장에 나와 시를 창작하고 불러야 한다. 우리는 음악의 시와 시의 음악을 구별했던 시인을 기억한다. 멕시코의 위대한 시인 파즈(1914-1998)였다.?급진적 불협화음의 음악은 아예 인정조차 하지 않았던 그에 의하면, “시는 고함, 끝말 이어가기, 비어, 중얼거림, 소음 그리고 몰상식한 말까지 받아들인다. 하지만 무-의미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임총장의 발전계획을 보면, 인문학 고전 읽기를 강조하는가 하면, 학제간문화연구원 설립안에는?시적 상상력의 가치를 살려내려는 의지가?분명하다. 우리 모두가 대학평가 척도를 혁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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