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제의에서 기원했다는 것은 상식이다. 전통적인 종합예술 의례, 제례에서 연극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기원은 기원일 뿐 이제 와서 연극을 보면서 제의를 찾아내는 것은 불필요하거나 불가능한 일이라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극은 ‘공연’, 요컨대 공적으로 연행되는 장르이다. 공공의 관심과 이해(利害)를 표현하는 제의성을 이해하는 것은 연극에서는 여전히 아주 중요한 일이다.
 위대한 셰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비극’의 전형처럼 접수된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비극 목록에 <로미오와 줄리엣>은 포함되지 않고 오히려 ‘셰익스피어 4대 희극’으로 거론된다. 아니 <로미오와 줄리엣>이 희극이란 말인가!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비극과 희극을 구분하는 기준이 지금과 같은 감정적인 슬픔/기쁨에 있지 않았다. 이 시대 비극의 힘 또는 그 영향력은 권력의 정점에서 파생되어 세계 전체에 미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따라서 그 시대의 ‘비극’의 주인공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왕, 영웅과 같은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아울러 이들의 비극은 평화롭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시작하여 갈등을 겪고 파국에 이르는 것이었으니 평범한 존재들의 소동, 그들의 갈등과 화해는 비극이 아닌 ‘희극’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베로나의 평범한 10대 소년소녀, 아무런 영향력도 갖지 않은 젊은이들이었다. 하는 짓을 보면 요즘의 철없는 10대와 다르지 않다. 로미오는 방금 로잘라인을 사랑한다고 비탄에 빠져 있다가 새로 줄리엣을 보자마자 다시 줄리엣에게 빠졌다고 호들갑을 떤다. 사랑에 빠져 부모 몰래 결혼식을 올리고 가짜죽음을 꾸미며 애인이 죽었다고 칼로 가슴을 찌르는 무모한 줄리엣 또한 로미오와는 천생연분이다. 즉 이들은 현대인과 같은 인간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평범하고 타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극단적인 결정을 해야만 하는 인간, 우리 자신과 같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바로 이러한 평범한 인간을 주인공으로, 이들이 겪은 ‘특별히 슬프고 고통스러운 사건’을 그 형식이야 어떻든 우리 자신의 ‘비극’으로 재정의하게 만든 작품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이 작품을 제사를 지내듯 되풀이 공연하면서 기성세대의 분쟁에 희생되어 간 ‘로미오와 줄리엣’을 기억한다. 그들을 희생케 한 우리를 반성하면서 도달했던 화해를 잊지 않고 되새기며 다시는 그런 일이 있으면 안된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따져보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아버지, 몬태규와 캐퓰릿 영감은 애초 왜 원수지간이 되었을까 원망스럽다. 아마도 이들이 베로나에서 손꼽히는 부자라는 데 그 힌트가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분쟁이 탐욕에서 비롯되므로. 결국 이들은 자식을 제물로 바치고야 화해에 이르렀으니 자식이 죽은 뒤에야 무슨 소용일까 싶다. 금으로 동상을 세워도 이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나 제의로 보면 제물은 문제를 극복하고 분쟁을 해소하는 데 그 용도가 있다. 만약 몬태규와 캐퓰릿이 자식을 잃고도 화해를 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 것인가. 제물을 바치고 소중한 것을 잃고도 화해는커녕 분쟁을 키우는 것은 어리석지만 없는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분쟁과 탐욕 때문에 많은 젊은이가 희생된 4월이다. 그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는 것은 분쟁을 해소하고 탐욕이 더이상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하는 데 있다.
 아직도, 아직도 할 일이 많다. 

윤진현 연극평론가  inh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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