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 부는 구조개혁 바람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정원 감축이 목표
지방대 불리, 민주적 절차 없다는 등의 지적도 있어…
전문가 “정원 감축에 동의하나, 방식의 개선 필요해”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온 A군은 복학을 앞두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정부의 대학 구조개혁 계획이 발표된 뒤 학교에서 정원감축을 위해 A군이 소속된 학과를 폐과했기 때문이다. 학교는 다른 과로 소속을 바꿔주겠다고 제안했지만 A군은 당황스러울 뿐이다.

지난 1월 28일 교육부는 ‘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입학정원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돼 대학 정원 감축시키고, 특성화 사업을 통해 대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정원 감축은 대학 구조개혁 계획의 핵심이다. 교육부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학령인구의 감소로 앞으로 10년 동안 대학 입학지원자가 급격히 줄어들어 오는 2023학년도에는 현재의 입학정원보다 16만 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교육부는 올해부터 △오는 2016년을 1주기 △오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를 2주기 △오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를 3주기로 나눠 매 주기마다 모든 대학을 평가하고 평가등급에 따라 최우수 대학을 제외한 모든 등급에 대해 차등적으로 정원을 감축할 계획을 밝혔다. 평가 등급은 최우수, 우수, 보통, 미흡, 매우 미흡으로 분류되며 2회 연속으로 매우 미흡 등급을 받는 대학은 퇴출된다.
또한 교육부는 올해부터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CK-Ⅰ), 수도권대학 특성화 사업(CK- Ⅱ), 학부교육선도대학 육성사업(ACE), 산학협력선도대학 육성사업(LINC) 등의 기존 대학재정지원사업과 대학 구조개혁 계획을 연계해 대학의 자율적 정원감축도 유도했다. 그러나 수도권 대학은 정원 감축에 신중한 반면, 지방의 대학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대학특성화 사업에 선정되고자 미리 정원을 감축해, 일각에서는 이 계획이 ‘지방대 죽이기’라는 우려가 있다.
이에 교육부는 재정지원사업에 따른 정원감축은 자발적이라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1월에 발표한 평가 방안은 그동안 지방이 불리하다고 했던 그동안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며 “대학들이 노력을 해서 어느 수준에 이르면 노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정성평가와 절대평가를 도입해 평가체계를 도입했다”고 전했다.
반면 박정원 상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평가 자체가 취업률이나 재학생 충원율 등 지방 대학에 불리한 지표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 지표로 구조조정을 하게 되면 지방 대학이 설 자리가 없게 되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한편 대학 구조개혁 계획이 본격화 되면서 기존의 학제를 바꾸고 새로운 융?복합 학부를 신설하는 등의 학제개편도 진행되고 있다. 일례로 세종대는 최근 영어영문·일어일문·중국통상학과 등을 ‘국제학부’로 통합하고, 천문우주학과와 물리학과를 ‘물리천문학과’로 통합하는 안을 확정했다.
그러나 일부 대학에서는 학제개편이 민주적 절차 없이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상명대의 경우도 지난 4월 2015학년부터 불어교육과 신입생을 받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에 상명대 불어교육과 학생들은 거세게 반대했으나 결국 2015학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고 사실상 폐과되는 것으로 잠정 결정된 상태다. 상명대 불어교육학과에 재학 중인 김혜수씨(21)는 “사전 공지 없이 학기 도중에 갑자기 폐과가 결정돼 학교의 일처리 방식에 굉장히 화가 났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학과 통폐합 과정에서 대부분 기초과학, 인문학, 사회학, 순수예술 관련 학과들이 대상이 되는 상황에 대해서 기초학문의 위축을 걱정하는 시선도 있다. 이에 교육부가 기초학문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입장과 학과 통폐합이 장기적으로는 대학별 특성화에 기여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시각이 모두 존재한다. 이정우 경희대사이버 교양학부장은 “대학이 대학답게 바로 서려면 기초학문이 탄탄해야 한다”며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고 저력을 기르지 않으면 대학이 더 이상 과거같은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이라 전했다. 그러나 김기대 대구가톨릭대 기획처장은 “대학의 특성화 방향이라는 것이 있는데 우리학교의 특성화 방향에 정합하게 학과를 변형하게 되면 백화점식의 학과가 아니라 대학교의 일관된 방향에 특성화된 학과가 있다는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라고 상반되는 입장을 표명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정원 감축이 대학 운영 경비의 감소로 이어져 교원 감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홍성학 충남보건대학 산업경영과 교수는 “대학 구조개혁 평가지표에 전임교원확보율이라는 항목이 들어 있어 어느 정도는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지금과 같은 평가방식을 유지하면 일반전임교원을 점차 줄이고 강의전담교원이나 산학협력중점교원, 비정년트랙 전임교원 등이 늘어 교원들이 점차 열악한 신분으로 인해 안정된 장기 학문연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러한 쟁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대학이 구조개혁을 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말한다. 현재 정부의 구조개혁안은 정원 감축에만 무게가 쏠려 있어 구조개혁의 비전과 가치를 실현하는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백정하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장은 “대학의 특성이나 의견들이 반영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대학 구조개혁이 진행되는 부분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며 “대학이 국립, 사립, 수도권, 지방에 따라 상황이 조금씩 다른데 정부가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평가하겠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학생 수를 줄이기 이전에 어떻게 교육의 질을 개선할 것인지 생각하면서 진행돼야 할 것”이라 전했다.

강기쁨 기자 glee93@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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