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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커 안 개구리의 반성문

 첫 번째 비커에는 개구리 서식에 적합한 섭씨 15도에 맞추고 개구리를 넣은 후 온도를 서서히 올렸다. 두 번째 비커에는 섭씨 45도에 맞추고 개구리를 넣었다. 그러자 전자의 개구리는 온도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죽었으며 후자의 개구리는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뛰어나왔다. 이는 미국 코넬대에서 시행한 실험으로,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삶아진 개구리 신드롬’이라 한다.
  요즘 사회는 커다란 비커가 된 것 같다. 대부분은 비커 안 개구리인데 정작 자신이 개구리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한 사건에 대해 열을 올리다가도 금방 사그라지거나, 자신과 연관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관심을 중단하곤 한다. 그로인해 정치적 무관심이 팽배해지는 것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보다는 소수의 목소리에 다수가 끌려가는 상황이 발생한다. 비커 안 개구리들은, 물이 끓기 일보직전이란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
  방학동안 학교의 많은 곳이 변화했다. 내부적으로는 인사이동, 외부적으로는 60주년 기념관 공사나 셔틀버스 값 인상 등 방학동안 학교의 시간은 꾸준히 흘러갔다. 신학기를 맞아 들뜬 기분을 느끼는 학우들도 눈에 보이는 변화에 대해 쉽게 인정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쉽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변화는 어느 순간 갑자기 다가오는 것이 아니며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앞서 말한 ‘삶아진 개구리 신드롬’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 큰 화를 입을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반복된 부조리 속에서 어느새 자신을 맞춰가고 있는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비커의 온도계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향력을 미칠 변화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주의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학교의 ‘주인’인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는 인하대학신문사도 비커 안에서 갈피를 못 잡고 이곳저곳 헤매는 개구리가 아닌가 싶다. 내부사정으로, 혹은 외부의 진행사항으로 인해 모든 것을 여실히 드러낼 수 없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결국 각자의 입맛을 모두 만족시킬 수 없는 기사가 나오니, 내 맛도 네 맛도 아닌 영양가 없는 글이 나올 때도 있다. 어찌 보면 이 글은 비커 안 개구리의 반성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다수의 개구리들은 물이 끓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가. 개구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다. 끓어가는 물속의 개구리란 것을 인지했으니, 이제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밖에 없다. 사실 뜨거운 비커는 차가운 비커보다 쉽게 깨진다는 것을 개구리들이 알았더라면 비커 벽을 공략하는 노력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설령 비커 안 개구리가 되더라도, 무지한 개구리는 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종연 편집국장  jy_100@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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