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 무엇를 위한 표현인가

Issue : 세월호 참사로 사회 전체가 떠들썩했던 가운데, 지난 7일 KBS 사내게시판에는 세월호 참사 취재와 관련해 막내기자들의 반성문이 게재됐다. 이들은 ‘KBS 기자는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줄임말)’로 전락했다‘며 냉철한 저널리스트의 흉내만 냈다고 반성했다. KBS에 이어 MBC 기자들도 ‘학생 전원 구조’ 등의 오보를 내고 혼란을 가중시켰다며 지난 12일 반성문 성격의 성명을 발표했다. 속보 경쟁을 하고 보도의 중립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기자들의 반성이 이어진 가운데, KBS 기자협회는 보도본부의 수뇌부에 일침을 가하며 KBS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KBS 보도국의 한 사회부 기자는 언론노조 KBS 본부 총회에서 “우리가 기레기라고 불리고 있을 때 회사는 뭘 하고 있었는지 반문하고 싶다”며 9시 뉴스를 통해 이번 ‘보도 참사’를 시인하고 반성하는 내용을 보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Focus : 지난 한 달간 우리사회에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언론사의 속보 경쟁, 안전행정부 감사관의 기념촬영 논란, 교육부 장관의 ‘황제라면’ 사건, 시장후보 아들의 ‘미개한 국민’ 발언논란 등, 세월호 참사로 충격에 휩싸인 우리사회는 ‘툭 건드리면 펑 터질 것처럼’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많은 국민들의 질타를 받은 것은 ‘언론’이었다. 각 언론사들은 오보를 내보내고 무리한 취재 경쟁을 했다며 국민들의 비판을 받았다. 결국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맡는 기자들에게는 격려와 칭찬 대신 ‘기자’와 ‘쓰레기’의 줄임말 ‘기레기’라는 단어가 붙었다.
사실 ‘기레기’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전부터 하나의 신조어로서 기자들을 비판하는 단어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기자로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한정된 소식을 타 언론사보다 좀 더 빠르게 보도해야하기 때문에 속보 경쟁은 기자들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특히 참사와 같은 긴박한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해야 할 때는 이 같은 경쟁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칫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는 과정이 소홀해지기도 할 것이다. 기자들은 보통 관련 기관들의 보도자료를 참고해 기사를 쓰는데, 세월호 참사 관련 보도의 경우 공식적 자료를 갖고 있는 정부의 발표만을 곧이곧대로 보도해 정부와 유가족 양측의 서로 다른 입장을 골고루 내보내지 못했다. 속보 경쟁 속에서 보도의 정확성과 중립성이 결여되는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만 본다면 기자들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다했다기보다는 경쟁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사익을 챙겼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 같은 비판에는 한 가지 측면이 결여된 듯하다. 기자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며 ‘기레기’라고 불리는 기자들도 언론사내에서는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이 윗선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한 언론사는 세월호 사고현장을 직접 취재했던 기자 4명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 중 한 기자는 ‘키워진 대로 순간순간 위에서 하라는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기레기가 돼있었다’고 말했다. 이것저것 요구하는 데스크의 지시를 따르려면 무리하게 취재를 강행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하기 싫은 취재를 하지 않았더니 사내에서 욕을 먹었다는 한 기자의 인터뷰 내용을 보니, 언론인 개개인의 사명이나 언론사의 상명하복 체계에 대한 문제는 실타래처럼 엉켜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고 있는 듯하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본다면 보도된 내용 하나하나에도 기자들 나름의 고충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겠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이번 참사가 국민들에게서 곧 잊힐까 두렵다고 한다. 비록 과열된 취재 경쟁으로 인해 그들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남았지만, 국민들로 하여금 참사를 상기시켜 희생자들을 오랫동안 기릴 수 있게 해주는 것 또한 언론이 할 수 있는 역할이다. 기자를 ‘쓸모없는 쓰레기’라며 다소 격하게 몰아붙이기에는 아직 이르다. 우리사회에 언론이 바르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신랄한 비판보다 진심어린 충고로써 언론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아닐까 싶다.

안은정 기자 aej365@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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