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杜甫)의 만년(晩年) 시를 읽고 싶었다. 400편이 넘는 작품을, 시간 순서대로 그리고 되도록 통째로 읽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만년’에 대한 이미지는 몇 해 전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 On Late Style』에서부터 구체화되지 않았나 싶다. (그때 ‘late’를 ‘만년’이라고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에 겐자부로는 아예 ‘최후의 스타일’이 낫다고까지 한다.)
올 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두보 읽기의 진도는 가뜩이나 낮은 기대치를 훨씬 밑돌고 있다. 『두시상주(杜詩詳注)』를 기본으로 하고, 『택풍당비해(澤風堂批解)』와 『두시언해』를 참고서 삼아 읽고 있지만, 두시의 어려움에 중세국어에 대한 무지가 또 다른 걸림돌이 다. 그래도 어떤 시는 외우고 싶은 마음까지 불러 여러 번 읽기도 한다.
「객당(客堂)」은 두보 나이 55세 경에 쓴 오언고시이다. ‘객당’은 손님을 접대하는 집이니 우리말로 ‘사랑채’ 쯤이 될듯한데, 안정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두보의 상황을 짐작케 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몇몇 인상적인 구절을 가까운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처음엔 ‘(죽지 않고) 오랜 병에 걸린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지, 쇠약해져 가는 나이에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에 마음이 ‘턱’하고 걸렸다. 유별난 감수성이 아니더라도 병을 운운하며 ‘달 감(甘)’ 자를 쓴 것을 보게 되면 마음이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래도 볕 좋은 오후,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다시 읽는 행운이 있어 전날의 상심(傷心)에 그치지 않을 수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 속 고향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이라 내면으로 침잠하게 되련만 시인은 되레 외면의 경물(景物)에 눈을 돌려 힘을 입는다. ‘돌은 따뜻하고 고사리순은 자줏빛, 물가 수려하고 갈댓잎은 초록빛.’ 불현듯 어린 시절 계곡의 물장난, 젖은 옷을 말리던 따뜻한 돌, 그 위로 선명히 남아 있은 물 자국이 서서히 말라 사라지던 기억 따위가 차례차례 자줏빛과 초록빛만큼 또렷이 떠올랐다.
만년의 시인은 시선을 넓힌다. ‘유유(悠悠)하게 햇빛은 강 위로 움직이고, 막막(漠漠)하게 봄은 나무와 작별한다.’ 사실 ‘유유’나 ‘막막’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유유’는 햇빛이 물위를 조용히, 가만히 비추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막막’은 꽃이 어지러이 흩날리며 떨어지는 모양이 아닐까. 봄이 나무와 작별한다는 표현은 ‘춘사목(春辭木)’을 풀이한 것인데, 근사하다. 봄이 나무에게 하는 작별은 분명 화사한 제 모양을 잃지 않았겠지만 단호한 맛없이 자주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었을까? 시인은 분명 작별의 말을 오래도록 듣고 있었을 것이다.
「객당」의 후반부는 염치없이 지키고 있는 관직에 기대어, 조정으로 달려가고픈 마음과 점점 더 멀리 떠돌고 있는 현실을 나란히 놓고 있다. 요시카와 고지로는 두보의 만년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현실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것으로 지탱해주는 그 무엇’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초라한 읽기만으로 ‘그 무엇’에 다가가리라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가능하다면 ‘지탱’하고 있음만이라도 보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류준필  jy_100@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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