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드디어 3학년이 됐다. 이제부터 취업과 진로 고민에 사망할거라는 이유로 다들 3학년을 사망년이라 부른다는데 예전에는 마냥 웃겼던 이야기지만 사망년이 되고 들으니 쓴웃음만 나올 뿐이다. 내가 1학년일 때는 3학년 선배가 무언가 달라 보였고, 마치 사회에 한발 걸쳐있는 듯한 지성인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는데 왜 나는 막상 사망년이 되어서도 갓 들어온 신입생 때랑 달라진 것 없이 나이만 먹은 듯한 기분이 들까. 혹시 지금 14학번 신입생들은 나를 보며 ‘3학년의 아우라’를 느낄까? 그렇다면 본의 아니게 속인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한번 해야 할 것 같다.

학교는 달라진 게 없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를 보는 내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처음에는 봄에 피는 벚꽃도 정말 예뻤고, 인경호의 오리들이 한가로이 노는 모습도 평화롭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벚꽃 대신에 후문가의 은행냄새가 먼저 떠오르고, ‘빠지면 AIDS 빼고 다 걸린다’는 인경호에서 몇 년째 서식중인 오리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는 생각보다는 오리들의 면역력에 대한 고찰과 같은 현실적인 생각이 먼저 든다. 싸고 맛있는 후문의 식당가들을 탐방했던 것도 옛말 이제는 언제나 가던 밥집, 혹은 학생식당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기 일쑤이다.

그렇다고 지금 사망년이 되었기에 비관적이고 행복도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레포트로 밤을 새야 하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친구들과 술을 마실 수 있는 배짱도 생겼고, 알바를 할 때 진상손님들을 퇴치하면서 생긴 경험 덕분에 사회생활에서의 적응능력도 많이 향상됐다. 대학교 4년을 마라톤으로 친다면 나를 비롯한 3학년, 4학년들은 반환점을 지나 결승점으로 향하는 중이다. 초반에는 힘과 열정으로 달렸다면 이제는 노련미와 완숙함으로(물론 나는 아직 전혀 노련하지도 완숙하지도 못하지만 말이다) 무사히 결승점까지 달리는 일만 남았다. 물론 결승점을 통과한다고 행복할 일만 남은 건 아니다. 또 다른 마라톤이 시작되겠지만 그래도 우선 달려보는 것이다. 1학년, 2학년들은 우선 내버려두고 나를 비롯한 3·4학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결승점을 위해 열심히 달리는 사람이든 아니면 잠시 쉬고 있는 사람이든 혹은 대학이라는 마라톤을 관두고 새로운 마라톤을 준비하는 사람이든 당장 눈앞의 미래가 걱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순간순간들을 불안하고 초조해하며 불행 속에 살지 않았으면 한다. 미래를 준비하며 매순간의 소소한 행복들에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아갔으면 한다.

박시철  jy_100@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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