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배경은 1950년대 말 초등학교 5학년 교실이다. 학급의 반장인 ‘엄석대’는 막강한 권력과 힘으로 아이들을 제압하는 교실의 독재자다. 급우들을 조종한 허울뿐인 반장선거는 그를 영원한 독재자로 만들어줬고 힘으로 만든 시험 성적은 그를 영원한 모범생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독재는 오래가지 못한다. 새로운 힘으로 등장한 새 ‘담임선생’은 엄석대의 부정을 엄벌하고 원래의 질서로 바로잡는다. 하지만 교실의 평화는 아이들이 스스로 찾은 것이 아니라 담임선생이라는 권력이 찾아준 것이다.
왕위가 주는 달콤한 유혹은 보이지 않는 폭력을 만들고 이것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른다. 그 보이지 않는 폭력이 초등학교 교실이 아닌 2013년의 대학 한가운데에서 은밀하게 벌어졌다. 권력자는 스스로 법전을 고쳐 왕위에 오르려 했고 감시기구는 불법을 못 본 척 눈감아버렸다. 꼬리가 길면 잡힐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들은 부정하고 있다. 진실을 숨기고 왕관을 내던진 채, 도망치기 바쁘다.
얼마 남지 않은 2013학년도 학생 자치사회는 기성세대의 정치보다도 부끄러운 족적을 남기고 있다. 학우들의 기대와 함께 선출된 리더들은 도덕성 결여와 동시에 윤리와 지성을 상실한 학내 분열의 씨앗이 됐다.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감시기구마저 그들의 잘못을 눈감아줬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2013년의 실망감은 더욱 더 커져만 가고 있다. 자유로운 토론은 어느 새 서로를 물어뜯는 공격으로 변질됐고, ‘나와 다른 의견은 모두 틀린 것’이 돼버렸다. 동시다발적인 시국사건이 만든 혼란스런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듯하다. 우리가 지양하려 했던 부정적인 학생사회의 모습을 왜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가?
공동체가 혼란을 겪는 시기에 뭉치지 않으면 더 추락하고 만다. 학우들의 의견을 통합시켜 진실을 찾아가야 한다. 순간적인 잘못을 한 자에 대한 분노는 크지만 현상의 근원을 찾아 미래를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보이지 않는 폭력에 대해 폭력으로 보복하자는 것이 아니다. 반성을 위한 최소한의 관용 정도는 베풀어야 한다. 우리는 성인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폭력이 부른 위기는 우리 스스로 평화로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 ‘담임선생’을 이용해 ‘엄석대’를 몰아내면 또 다른 ‘엄석대’가 만들어질 뿐이다. 학교가 추락한다고 좌절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의 모습이 사회에 내비춰지는 자화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나친 비판은 비난만을 부른다. 앞으로의 혼란을 헤쳐 나갈 현명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백현욱 부장  back8912@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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