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에서나 있음직한 모자간의 대화를 들어보자. “얘, 게임만 하면 어떻게 해! 공부도 좀 해야지! 제가 언제 겜만 했어요? 학교도 가고 학원도 갔는데. 그리고 선생님이 공부만 하면 바보가 된대!” 이 대화에서 학생은 ‘공부도 좀 하라’는 엄마의 말을 ‘공부만 하라’는 말로 슬쩍 바꿔놓고 반발하고 있다. 순간 엄마는 말문이 막힌다. 전형적인 허수아비 논증에 속한다. 그런데 엄마의 말도 가만히 보면 아이가 게임‘만’ 했다고 과장했기 때문에 역시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를 저질렀다. 피장파장인 셈이다.

허수아비 논증은 일상생활 뿐 아니라 실제 학생들의 과제물이나 연구자들의 논문에서도 빈번히 발견된다.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입증하기 위해 기존의 주장이나 학설에서 약점을 의도적으로 확대한 다음 이를 논박하는 식이다. 더욱 고약한 것은 정치적 현안을 놓고 벌이는 정당간의 논쟁이다. 애당초 대화할 마음은 없고, 상대의 약점을 침소봉대해서 자신의 주장만 펴겠다는 태도이니 억지에 다름없다. 허수아비 논증은 일상에서 빈번히 범하는 오류중의 하나인데, 실은 논리적 오류라기보다는 배타적 이기심이나 이해관계의 충돌과 같은 입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경우가 더 많다. 상대의 말은 듣지 않고 내 고집만 앞세우게 된다.

들판의허수아비야 제 구실을 못한다 해도 가을을 알리는 전령 노릇은 한다. 또 농민들의 표현물이라 여긴다면, 서로 다른 표정을 하고 서있는 허수아비들로부터 소박한 조형적 가치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허수아비 논증은 대화를 비생산적으로 만들며 배타적 대립으로 사회를 분열로 몰아가는 백해무익한 ‘허수아비’이다. 들판의 허수아비를 볼 때마다. 우리사회에 횡행하는 허수아비 만들기 식의 토론문화나 내가 저지른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도 되돌아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