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가을내음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가문과 태풍으로 인한 생채기가 났던 여름의 긴 시간을 보내고 이제 성숙한 영금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계절의 변화를 뒤쫓기도 힘든 양 그냥 시들어가는 듯한 모습이 근래 가을 언저리의 풍경이다.

지구촌 환경의 이러한 변화를 사람들은 이상기후라고 한다. 하지만 지난 여름 박노해 시인은 지금 눈앞의 자연현상의 변화를 두고, 이제 지구시대는 “이상기후가 정상기후다!”라고 했다. 삶의 내용이 이상하고 생활방식이 문제가 있으면 자연도 기후도 살아남기 위해 정상반응하고 이상해 지는 법이기 때문이란다(박노해, 「이상한 기후」, 2012.08.07).

이상 현상이 상시적인 모습이 되고 그리하여 정상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자연조건만은 아니다. 4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학점과 스펙이라는 무덤 속에 자신을 묻어야 했던 이들이게 이제 가을은 설렘의 계절이 아니라 마지막 고통의 시간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천고마비(天高馬肥)가아니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입사원서를 쓰느라 천고마비(千苦痲臂)가 된 것이 지금 가을을 맞는 수많은 사람들의 현실이다.

이렇게 4년을 바치고 힘겹게 취업문을 두드리는 이들 다수에게 사회와 기업에서는 창조성이 부족하고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창조성, 이 말은 얼마나 고상한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고대하는 그런 가을의 향기같은 말이 아닌가? 긴 여름 끝에 깊은 성찰과 여유로운 사색 속에서 새로움을 잉태해내는 순간은 그야말로 가을의 절정이다. 그런데 있어야 할 그러한 창조성이 날로 보이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탄식한다. 누구의 탓인가! 다시 박노해 시인의 말을 빌리면 그러한 이상기후를 만들어 낸 것은 지구의 한계를 뛰어넘어 먹고 입고 쓰고 욕망하는 우리들의 비정상적인 모습이라고 한다.

대학을 마치고 사회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에게 창조성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는 수많은 지원자들 속에서 누구를 뽑으면 좋을지 몰라하는 몰인정한 투정은 아닐까?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급급한 많은 이들에게 전문성과 창조성, 종합적 사고를 갖추는 것은 좋지만 어디까지 기대 가능한 것일까? 설사 그들에게 부족한 면이 많다하더라도 그것이 단지 당사들만의 문제일까? 창조적인 사고를 배양하기엔 우리 사회는 너무 그들을 매 순간 눈앞의 숨 가쁜 경쟁으로 내몰지는 않았는가?

사회의 여러 요구에 맞추어 힘겹게 달려오느라 자신마저도 잊어버린 수많은 학생들,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잃어버린 스스로를 되찾게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자신을 외적인 몇 가지 지표로 환원하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을 때 창조적 능력과 열정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창조성과 전문성이 아니라 그러한 능력을 추구할 수 있는 시간과 정상적인 환경이 아닌가 싶다. 즉 우리 사회가 지나친 과욕으로 그들로부터 앗아갔던 그 시간, 그 가을을 돌려주는 것이 우리가 그들을 평가하기 전에 우선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지금 그 어디선가 홀로 물들고 있을 가을을 찾아 떠나고 싶다.

차태근 교수(중국언어문화전공)  inhanews@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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