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면 초등학생 아들과 기싸움을 거듭한다. ‘런닝맨’과 ‘나는가수다2’를 왕복하는 리모컨 갈등이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취향의 충돌이니 타협은 없다. 애비의 권위를 TV 프로그램에 건다. 문득 영화 관람의 대립도 오버랩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과 ‘배트맨(다크 나이트 라이즈)’. 선택의 순간, 아내는 늘 ‘엄마’의 자리만 고수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시큰둥하게 관람한다. 도대체 언제쯤 ‘어메이징’한 장면이 나오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본다. 어두운 영화관을 벗어나 대명천지로 나서며 스파이더맨과 배트맨의 거리가 궁금해졌다. 스크린의 히어로들도 세대차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파이더맨은 균형을 잡지 못해 여기저기 부딪친다. 갑작스런 육체의 성장이 스파이더맨 환상의 기저이다. 그것이 10대의 좌충우돌이다. 내 어린 시절의 영웅 슈퍼맨은 깔끔한 청년이다.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한 20대 신입사원이다. 초입의 설레임과 미래의 낙관이 빚어낸 형상이다. 사회의 규칙과 관행을 익히게 되면서 슈퍼맨은 배트맨이 된다. 낮과 밤은 화합하기 어려운 다른 세계이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지만 그냥 인정할 수는 없다. ‘어른되기’의 공포감이다. 그 부조리와 분열이 정신분석학의 입지다. 그 좁은 길을 지나 4~50대의 여유가 생긴다. 그 여유의 대가는 막대하다. 육체의 쇠잔이다. 노쇠를 돌이킬 수 없으니 특별한 장비의 보조를 받는다. 심장에 원자로를 달고 다니는 아이언맨의 등장에 안도한다.

이들 세대별 히어로의 이면에는 또한 충족되지 않는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10대의 육체적 성장을 틀지우는 것은 교육 현실이다. 거미줄에 매달려 스파이더맨처럼 빌딩 숲을 누비면 20대에 슈퍼맨의 외양을 가질 수 없다. 슈퍼맨이라면 깔끔한 복장으로 낮에는 대기업에 다니다가 때로 지구를 지켜야 한다. 20대가 끝나도록 취업하지 못하니 슈퍼맨도 사라진다. 낮과 밤이라는 다른 세계의 원리에 번민하고 싶어도 그럴 겨를이 없다. 대출금 상환도 아득하고 육아에 치인다. 그래도 바란다면, 낮의 시간이 더 길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젊음이 끝났음은 잘 알지만 그 이후의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평균수명의 연장은, 젊음이 늘어나는 것과는 상관없다. 늙은 채 지속되는 시간의 연장일 따름이다.

다들 영웅이건만 아직 영웅본색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 ‘육아ㆍ교육ㆍ취업ㆍ주택ㆍ연금’은 고블린이나 조커보다 약한 상대가 아니다. 이 강적들에 맞서려면 영웅의 풍모가 없을 수 없다. 이는 혹시 ‘판타스틱4’나 ‘X맨’ 시리즈처럼 드림팀을 구성해야 가능한 것일까. 어린 시절, 슈퍼맨ㆍ원더우먼ㆍ아쿠아맨이 함께 하던 슈퍼특공대(저스티스 리그)처럼 말이다. 올 여름 ‘어벤저스’의 영웅들 연합이 출현한 것도 그런 뜻일까. 12월에 있을 대선 때라면, 우리의 잊혀진 영웅본색이 일깨워질까. 갑자기, 몹시도 궁금해진다.

류준필 교수 (한국학연구소 HK교수)  inhanews@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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