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 인도의 ‘보팔참사’ 사건을 기록한 라아즈쿠말의 기자일지를 읽게 됐다. 보팔참사는 1984년 인도의 살충제 제조 공장인, 유니온 카바이드에서 유출된 가스로 인해 도시 전체가 죽음에 휩싸였던 사건이다. 라아즈쿠말은 보팔참사가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유니온 카바이드 공장의 가스가 유출돼 큰 피해를 일으킬 것이라는 점을 예견했다. 어느날 그 곳의 설비 기사였던 자신의 친구가 공장에서 새어나온 가스로 인해 갑작스럽게 죽게 됐다. 제대로 원인을 밝히려 하지도 않고 덮어두려는 공장과 언론의 태도에서 그는 분노했다.

그 후 라아즈쿠말은 20여 년 동안 매일같이 공장과 도서관을 오가며 조사했다. 공장에서 쓰는 화학물질이 어떤 반응을 일으킬 것인지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기사도 수차례 게재하고, 직접 의원들을 찾았지만 묵살당했다. 자신의 도시를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그는 최선을 다했다. 아무도 자신의 목소릴 들어주지 않았어도 좌절하지 않았다. 결국 그가 예견했던 사건이 일어났고, 만 5000명이 넘는 수의 인명피해를 나았지만 오히려 국가는 책임회피에만 급급했다.

라아즈쿠말의 기자일지를 읽어갈수록 그는 사건의 예견뿐만 아니라 그 후의 상황까지도 예견한 듯했다.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고 기자로서 또는 운동가로서 도시를 위해 활동했다. 비록 아무도 그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가 하는 말, 행동에는 언제나 확신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직업을 갖지만 일을 하는 데에는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다. 돈, 명예, 가족, 자아성취 등 사람마다 직업에 대한 가치는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알아주는 이 없이 자신의 사명을 위해 최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나는 라아즈쿠말의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기자일지를 읽는 내내 그의 마음 속에 지어졌을 응어리가 느껴졌다.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태도가 현재 직업을 가진 이, 그리고 앞으로 가질 이에게는 더더욱 필요할 것 같다.

최예린(언정ㆍ2)  webmaster@inhanews.com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