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보백보’라는 말이 요즘 새삼스러워지는 일이 많다. 조금 낫고 못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똑같다는 의미를 지닌 이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원래의 의미 때문이 아니라, 이 말에 이어지는 맹자의 가르침 때문이다. 듣고 싶든 그렇지 않든 들려오는 소식들을 접하노라면‘오십보백보’와 관련된『맹자』의 구절들이 새삼스레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양(梁)나라의 혜왕이 자기는 나라 다스리는 일에 정성을 다하고 있음에도 그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그 까닭을 묻자 맹자는‘以五十步笑百步’라는 비유를 통해 양 왕이 주변 나라의 왕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비판한다. 그리고는 백성들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것들을 풍족하게 해 주어 불만이 없도록 하는 것이 왕도정치의 시작인데, 양혜왕은 개, 돼지가 사람의 식량을 축내도 막지 않고 길에 굶어죽은 시체가 있어도 구제책을 내놓지 않으며 사람이 죽어도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 세월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변명하니, 이는 사람을 찔러 죽이고도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 칼이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세월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고 꾸짖는다. 양 혜왕에게는 비수와 같이 느껴졌을 신랄한 비판이다.

요즘 들려오는 먹고 사는 일과 관련된 소식들은 암울하기만 하다. 전 세계적인 불황, 주가 하락, 환율 폭등과 이에 따른 수입 원자재가 인상, 청년 실업 증가, 물가 인상, 심지어는 국가 경제 위기설까지. 그런데 나라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위기가 자기들 책임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리고는 촛불 때문에 또 대공황 이후 최악인 세계적 불황 때문에 이런 어려움이 온 것이지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항변들 가운데 그럴 수 있겠다 싶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모습 위에 예의 맹자의 구절이 오버랩 되곤 한다. 모름지기 위정자는 세월을 탓해서는 안 된다는 맹자의 가르침과 거리가 너무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오십보백보’가 새삼스러워지는 것은 위정자들의 세월 탓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인터넷 상에 비판적인 글을 올린 미네르바의 구속 사건에서도 이 구절이 새삼스러워진다. 미네르바의 구속은 그가 인터넷에 올린 글 속에 포함된 한두 허위 사실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반국민들에게 미네르바의 구속은, 단지 허위 사실을 유포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사실이 아니라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써서는 안 된다는 함의로 다가온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운 것 같다. 이러한 이유로‘허위 사실’이 실제 사실과 다른 한두 가지만이 아니라 그가 쓴 비판적인 글 전체의 내용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인상은 자기 잘못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맹자에게 계속 가르침을 청했던, 뼈아픈 비판을 감내하면서 그 비판 속에 담겨 있는 가르침을 얻고자 했던 전국시대 양 혜왕의 모습과 대조되어 더 크게 부각된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오십보백보’라는 말이 새삼스러워지는 뒤 끝에 남는 것은 항상 왠지 모를 초라함과 씁쓸함뿐이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러한 우울함이 결코 사실에 입각한 것이 아니리라는 희망을 버리기 어렵다. 광명한 21세기의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위정자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2,300여 년 전의 전제 군주도 해냈던 일을 할 수 없을까, 맹자뿐만이 아니라 서양의 성현들의 가르침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오늘날 그 한편에 놓여 있는 왕도정치의 기본을 모르고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는 것이다. 아니 나아가서 민주적 가치를 체화하고 있을 우리의 위정자나 지도층 인사들은 성현뿐만 아니라 시정의 필부필부에게서도 가르침을 얻고자 할 정도로 깨어 있을 것이며 그러한 점에서 양 혜왕이 못한 일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게 된다.

여기에서‘오십보백보’의 가르침이 위정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일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면 자연스레 학생을 지도하고 교육하는 나의 교수 생활은 어떠한지 돌아보게 된다. 이 말을 돌이켜보면서 도달한 생각의 끝은 결국 학생들에게 필수적인 것들을 풍족하게 해 주어 불만
이 없도록 하고 학생들의 문제를 세월 탓으로 돌려버린 일은 없었을까 하는 자기반성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래저량오십보백보’라는 말이 요즘 들어 더욱 새삼스러워진다.

장윤희 한국어문학 교수  webmaster@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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