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저문 캠퍼스를 거닐며 생각에 잠긴다. 2008년이 저물어간다. 내 대학 생활도 저물고 있다. 새내기 때의 설렘을 기억한다.

시작과 끝에서 느끼는 설렘은 층위가 다르지만 여러 모로 비슷한 것 같다.

아마도 끝은 늘 새로운 시작과 변증법적으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올해를 마무리하고 또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는 지금은 바야흐로 위기의 시대이다.

세계 언론은 1920년대 대공황 이후 80여년 만에 대공황이 또 시작됐다고 한다.

작금의 위기는 비단 ‘신자유주의'로 명명되는 특정한 형태의 자본주의만의 위기가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상승기를 마감하고 쇠퇴기에 접어든 자본주의는 이제 본격적인 해체기에 이르렀다.

혹자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순환적이며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면 다시 호황기가 찾아오리라 혹세무민하지만, 현재 자본주의의 위기는 주기적 위기가 아닌 체계적이고 총체적인 위기이다.

우파 언론조차 “신자유주의의 위기" 대신 “자본주의의 위기"라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자본주의는 이미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고 지구와 인류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저물고 있는 자본주의는 우리 대학생들의 미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신문을 펼치니 청년실업 백만 시대라는 기사가 눈에 띈다.

우리 대학생들은 입시지옥을 거쳐 대학에 진학한 뒤로도 캠퍼스의 열정을 만끽하기보다는 취업전쟁을 대비하기에 바쁘다.

쉴 시간을 줄이고 잘 시간을 줄이며, 전공 공부에, 토익 공부에, 세계의 그 누구 못지않게 부지런히 사는 한국 대학생들 가운데 자그마치 백만여 명이 청년실업자가 돼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렵게 일자리를 얻게 된다고 하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돼 고용불안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허덕이게 되기 십상이다.

정말 비정규직은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천형인가?

좋은 학점과 높은 토익 성적을 받고 어학연수까지 다녀와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로 취직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탓해야 하는 것인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로 취업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얼마 못 가 정리해고 당하는 현실은 어쩌란 말인가. “로또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이 통용되는 현실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할까?

우리의 현실이 암울하고 미래가 막막한 것은 결코 우리가 못났거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인간을 한낱 기계 부품 취급하는 자본주의체제 자체에 있다. 홉스 봄이 “극단의 시대"라 명명한 지난 20세기는 인류가 지금까지 알아 온 가장 야만적인 세기였다.

자본주의는 역사상 최초로 어떤 종(種)도 남기지 않고 모든 생명을 위협하며 지구를 파멸로 이끌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지구적인 생태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현재와 같은 과잉생산과 과소비가 지속된다면 인류는, 아니 지구는 공멸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해체기에 이르렀지만, 결코 자동으로 소멸하지는 않는다.

역사가 자본주의에 선언한 사형선고를 우리 스스로 집행할 때에만, 비로소 야만적인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체제를 바꾸기 위한 노력은 스스로를 바꾸기 위한 노력과 같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우리는 끝없는 탐욕으로 생태계를 식민화하고 자신의 영혼을 식민화했던 제국주의적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을 폐기해야 한다. 개발보다 환경이, 경쟁보다 연대가 인간을 비로소 인간이게끔 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안달복달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상품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인간임을,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임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장기투쟁 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장애인들과 어깨를 걸고 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니라 바로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임을 스스로 깨달아야만 한다.

다시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들을 바라본다. 저들은 썩어 거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 새 봄에 다시금 눈부신 녹음(綠陰)이 캠퍼스에 가득할 것이다.

현실이 아무리 회색빛이라 해도, 우리들의 미래는 찬란한 푸른빛으로 가득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성은(한국어ㆍ4)  webmaster@inhanews.com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