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12편의 응모작을 읽었다. 서너 작품을 제외하면, 몇 번 소설을 써본 듯 대체로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반가웠다. 그러나 그 수준이 그만그만하여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작품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 대로 4편을 고르고 그 중에 당선작으로 올린 만한 작품이 있는지 여러 번 면밀히 검토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선작을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단편소설을 쓰는 사람은 실로 폭발에 해당하는, 그리하여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반드시 반전이 있어야 한다는 말과는 다르다. 소설은 인물과 인물, 인물과 세계와의 갈등관계이고, 그 갈등관계의 폭발이며 그것의 해소관정이다. 이러한 것은 내면의식적 고백소설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이태형의 「12월로 가는 길」은 시간여행을 다룬 자못 환상적인 작품이다. 사진 속에서 ‘긴 머리에 붉은 색 코트를 입고’,‘행복한 듯 미소 짓고 있던 그녀’는 주인공이 군대에 가 있던 2년여의 공백 기간 중에 ‘검은 색 코트를 입고 있었고,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있는’것으로 나타난다. ‘한밝’이라는 고향 도시로의 환상적인 여행은 주인공의 그녀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지만 실은 그녀는 죽은 사람인 것이다. 문장이 안정되어 있고 차분히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재능도 보이나 환상 여행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자살인자를 지니고 있어 늘 자살의 유혹을 느낀다는 것을 소재로 하여 쓴 이주선의 「자기살해인자」는 매우 독특하여 흥미를 끈다.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는 유혹을 방지하기 위해 아파트의 문이란 문은 모두 판자로 막아 망치질을 하고 죽어버린다던가, 전철역에서 선로에 뛰어들지 않기 위해서 은색 수갑을 한쪽은 손목에 다른 한쪽은 의자 기둥에 묶어둔다던가 하는 발상도 기발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대화와 설명을 위주로 하여 짜여져 있어서 소설적 형상화가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보았다. 의미단락 없이 문을 매 행마다 가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긴진우의 「그녀의 강」은 버지니아 울프의 이미지에 기대어 대학 선배인 ‘그녀’의 외로움에 허우적거리는 심리상태를 세련된 문체로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후배 남학생 J에게 연애를 하지 말라고 여러 번 충고했으나 그 말을 듣지 않자 배신감을 느끼고 전에 사귀던 군대에 가 있는 남학생을 만나는 과정이 너무 피상적이다.

곽정은의「석류가 터질 때」는 통과제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소녀인 ‘나’ 1인칭주인공의 초경 경험을 석류가 터지는 것에 비유하고 있는 이 작품은 주인공이 어른들의 세계를 깨달아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고물상 가게의 외팔이 아저씨는 왜 술집을 열고 있는 현주 언니를 좋아하나, 왜 성당의 외국인 신부는 내게 입을 맞췄나 등등 주인공은 동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삶의 양상들에 대해 의문을 품으면서 나름대로 헤아려 보려고 하는 것이다. 다른 소설에 비해 이 소설이 유별나게 돋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각각의 인물들의 성격이 살아있고 단단한 구성력을 지니고 있어 소설적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초경과 석류의 비유는 새로운 것이 아니어서 신선한 느낌이 떨어진다. 이 작품을 우수작으로 삼지 못하고 가작으로 정한 이유이다.

소설쓰기의 정도란 읽고 쓰는 길 말고는 없다. 심사평에 오른 학생들은 물론 오르지 못한 학생들도 더욱 분발하여 훌륭한 작품을 써내기를 기대한다.

김용성 교수(국문)  webmaster@inhanews.com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