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 노인의 날, 김수현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가 끝났다.

젊은이들의 사랑과 갈등 뿐만 아니라 노인들의 사랑도 담은 드라마였다. 노인이 화장품가게 여자와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이 전개됐는데 시청자들, 특히 젊은이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노인들에게도 사랑의 혁신이 있다면 정치의 혁신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노인의 멈추었던 심장을 다시 뛰게 한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고대 그리스의 헬레네와 같은 최상의 미같은 것일까. 그 미는 트로이 원로들의 모임에서조차 인정됐을 정도였다.

“트로이인들과 훌륭한 정강이받이를 댄 아카이아인들이/ 저런 여인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하는 것은/나무랄 일이 아니오. 그 용모가 실로 불사의 여신들을 닮았구려" 헬레네가 몰고 온 파란을 두고 18세기 독일 문학자 레싱은 “가장 위엄있는 노인들이라면 사랑의 열정은 오직 순간적인 불꽃이고, 가장 지혜 깊은 노인이라면 곧바로 그 불꽃마저 꺼버릴 것”이라 해석했다. 물론 호메로스에서 노인들은 헬레네의 미가 위엄을 넘어서게 하는 최상의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이렇게 위엄을 유지하려는 말은 이러하다. “하지만 제아무리 아름답다할지라도 헬레네가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 장차 우리 아들들에게 재앙을 남기지 않게 하시오" 헬레네, 그 미는 그리스의 예술세계의 이상이다. 그리스의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가장 압축적인 언어가 헬레네다. 단지 시대의 도덕성이 열정을 억누르고, 그것을 노인다운 위엄으로 장식하고 있을 따름이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는 “노인들의 사랑은 부도덕하다"는 격언이자 명령이 있었다. 그런데 호메로스는 노인들이 헬레네를 보는 장면을 특이하게 그렸다: “헬레네는 흰 너울을 두르고 여러 노인들 한 가운데로 나타난다. 이들 노인들 속에는 프리아모스도 있는데, 그가 프리아모스임은 자신의 왕적 위엄의 표시들로 식별될 수 있다. 예술가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정열이 차갑게 식은 이들 노인들의 얼굴들에 나타난 욕정에 가득찬 응시와 놀라운 경탄의 모든 표정들을 통해 우리에게 미의 승리를 감지하게 하는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는 노인이 사랑의 욕정에 불타는 응시를 던지고 있다면 가장 위엄있는 얼굴이라 할지라도 우습게 만들고 말며, 젊은이들과 같은 사랑을 드러낸다면 혐오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호메로스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헬레네의 미는 원로들의 위엄을 넘어선다는 점, 노인들에게도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랑의 열정이 있다는 그것 아닌가. 헬레네의 미에 대한 예찬만은 아니었다. 노인의 사랑을 부도덕하다고 비난하는 사랑의 관례에 대한 도전. 노인[원로]들은 정신에서는 젊은이였다. 원로원의 권위는 이러했다.

신라 향가 ‘헌화가'에서 노인은 절벽의 꽃, 철죽꽃을 따서 바치려 한다. 여기에서도 노인의 사랑은 부도덕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최상의 미, 수로부인을 표현하는 의미론구조 뿐만 아니라 젊은이와 다를 바 없이 목숨을 거는 노인의 용기와 그 위대한 미를 표현할 때, 절벽의 꽃을 따는 숭고한 표현을 사용한다. 신라 미학은 고대 그리스의 헬레네의 미학과 연결돼 있으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노인들도 젊은 사랑을 하듯이 정치에서도 진취적일 수는 없을까. 프롬은 오직 소비에만 관심을 두는 현대사회의 슈퍼소비자 노인들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노인상을 그린 바 있다: “사실 노인은 위대한 도전이며 기회다. 어쩌면 노년은 그가 생계를 꾸려 나가야 할 의무로부터, 실직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또 승진하기 위해 상급자에게 아첨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이제껏 지내왔던 그 어떤 시기보다도 가장 훌륭한 시기가 될 수 있다. 노인은 진정 자유로운, 마치 꿈속에서처럼 자유로우며,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창조적인 인간이다"

화장품가게 여인이 또 다른 헬레네나 수로부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노인들도 혁신과 창조의 광장에 참여하는 젊은 정치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아, 원로들!

서규환(정외) 교수  webmaster@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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