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전 봄, 빛고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가. 한 도시에 탱크를 밀어 넣던 권력에 맞서다 지는 꽃잎처럼 쓰러져간 사람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그 날의 상처를 껴안은 채 말없이 아픔을 삼키고 살아가는 그네들을 우리는 너무 빨리 망각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기 소리없이 한점 꽃잎이 지고 있는데.

‘저기 소리없이 한점 꽃잎이 지고’의 저자인 최윤 작가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현재 서강대학교 불문과 교수로 재직중인 그의 연구실이었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미미하게나마 책 냄새가 밴 그의 연구실에서 최작가와 기자는 ‘한 실성한 소녀-광주’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실성한 소녀가 죽은 오빠의 무덤을 찾아 헤매며 긴 여정을 한다. 아들을 잃은 분노로5.18 항쟁에 나선 엄마를 따라 시위현장에 나온 소녀는 진압군에 의해 사람들이 무참히 쓰러져 가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그 날의 시위현장에서 엄마는 검은 구멍을 내고 죽고, 죽은 엄마를 짓밟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광주를 떠나 오빠의 무덤을 찾는 것이다.

집필동기를 묻는 기자의 말에 최작가의 대답은 간단했다. “당연히 써야죠” 5.18 광주민주항쟁의 절실성에 대한 신념이 결집된 대답이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든 소녀에게, 또 한 도시에 가한 이러한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단호한 최작가의 말투에 5.18을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스쳤다. “5.18을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다. 또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 광주에 대한 정보나 기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위해 소설을 쓰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소녀의 오빠 기일에 맞춰 그의 친구들은 그녀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사람들은 소녀에 대해 모두 다른 말을 한다. 최작가는 이를 두고 소녀가 5.18의 희생자인 동시에 상처입은 광주라고 설명하다. “소녀를 본 사람들은 소녀를 시점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이 만난 소녀를 이야기한다. 광주도 그렇다. 광주도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시선으로 기억된다”

소녀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오빠의 무덤이 있는 서울로 올라오고 마침내 오빠의 무덤에 이르러 회한의 그 날을 고백한다. 이에 대해 최작가는 “소녀가 산하를 가로질러 오빠의 무덤까지 헤매게 한 여정은 서울과 광주를, 한국사회에 줄을 그은 것”이라며 숨은 의도를 밝혔다.

이후 소녀는 떠나고 그의 행방을 쫓던 사람들은 방향을 잃은 채 소설은 끝을 맺는다.

책이나 글을 통한 감동의 전이를 ‘감염’이라고 부른다는 최작가는 마지막으로“ 광주가 나를 감염시켰듯이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소설을 통해 감염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문용주 기자  webmaster@inhanews.com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