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미국에서 시작한 금융위기가 세계화의 재앙을 불러오고 있다. 그런데 아시아 다른 나라보다 특히 한국증시의 급락률이 높은 이유는 무얼까? 다른 나라보다 외국인 투자비율이 높다는 이유가 제시되기도 하고, 경상수지 적자가 날 정도로 기초가 부실한 한국경제의 실력이 또 다른 이유로 언급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사실들은 이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었을까? 그건 아니었다.

높은 외국인 투자비율은 불안한 요인이기는 했지만 동시에 풍부한 유동성을 제공했고, 한국증시는 그것을 누렸으니까. 또 얼마 전까지 투자의 귀재라는 워런 버핏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좋으니 투자할만하다고 했으니, 누굴 믿을 수 있을것인가? 아마도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불안해하면서도, 아직은 아닐 것이라며 요행을 기대했고, 그 불안과 요행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투자를 하고 재테크를 했을 것이다.

세계화는 여러 이점을 주고 많은 점에서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사람들을 점점 ‘글로벌 불안'에 떨게 한다. 세계화가 초래한 금융위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을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까. 이번 금융위기에 크게 책임이 있는 월스트리트의 5대 투자은행들이 이번에 모두 파산하거나 인수되거나 혹은 일반 상업은행으로 전환된다고 하니, 아마 무절제한 금융질서가 조금은 질서를 회복할 듯하다. 그러나 위기가 끝난 것은 전혀 아니다. 위기에 직면한 상태에서 미국 정부가 조금 개입한 것일 뿐이며, 위기를 초래한 당사자들도 자신들을 위해 국가의 구제금융을 임시로 받아들인 것뿐이다. 아직도 국가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어 다니는 금융자본에는 세금도 물리지 못하는 형편이다.

‘카지노 자본주의'라는 말이 있다. 도박처럼 불안정한 성격의 투자에 기초한 경제질서를 지칭하기에 한편으로 적절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위기의 성격을 오히려 가리는 점이 있다. 카지노는 일상적이지 않고 예외적이라는 점에서 그 말은 마치 경제적 불안의 메커니즘이 예외적으로만 도박판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위 제도적이고 정상적인 증시 자체가 도박 수준에 도달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더욱이 세계화 과정 속에서 엄청난 규모의 투기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되면서, 그 경향은 가속화되었다. 미국정부가 7000억 달러 수준의 구제금융을 지원한다고 하자, 재정적자의 확대와 달러 가치의 폭락을 예측한 투기자본들이 석유 등의 원자재로 쏠렸다. 그 결과 가까스로 100달러 아래로 떨어졌던 석유가격은 다시 폭등했다.

세계화된 금융경제 안에서의 불안은 어느 곳이든 사회적 공포를 유발한다. 한국은 그 정도가 다른 나라보다 심하다. 자살율도 OECD 국가들 중에서 최고다. 그런데 그렇게 자살률이 높아도 사람들은 무감각하다. 그렇다고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불안과 공포가 일상이 된 나머지, 사람들은 무감각해진 것이다. 일상이 된 그것을 견디려면,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일상을 정상으로 여기다 못해, 이제는 아예 거기서 벗어나기조차 원하지 않는 듯하다. 과거엔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다고 했다. 이제는 영혼이 그 잠식에 익숙해지고, 불안과 공포에 중독된 듯하다. 심지어 이것들이 투자를 부추기고 자본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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