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으로 오기 전에 나는 서울에서도 가장 복잡한 강남역 부근의 법무법인에서 근무했다. 그곳은 눈 씻고 둘러봐도 녹색을 찾기가 힘든 곳이었다. 가로수가 더러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계절의 변화를 보여줄 정도로 무성한 나무는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대학으로 옮겨 처음으로 맞은 이번 봄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마른 나무 가지에서 연녹색으로 작은 잎을 피워내는 나무들과 눈송이처럼 날리는 벚꽃잎은 정말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것은 나무들만이 아니었다. 학교를 떠들썩함으로 가득 채우는 젊은 학생들의 모습은 눈이 부셨다. 사람들이 왜 젊음을 봄에 비유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조금 더 다가가 보니 젊은 학생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막상 젊은 시절을 살고 있는 학생들은 경제적인 문제, 불투명한 진로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등으로 답답하고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젊음이 아름답다는 말은 이미 젊은 날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회고담인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막막하게 펼쳐져 있는 미래가 두려워 빨리 나이가 들어 마흔이 되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무한히 펼쳐져 있는 가능성 때문에 아름답지만, 열려있는 많은 가능성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일에 자신의 열정을 바쳐야 할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에, 젊은 시절을 살아간다는 것은 힘겹고 외로운 일이다.
그렇게 힘겨운 날 친구나 선후배로부터의 따뜻한 격려, 강의 중에 들었던 마음에 와 닿는 말 한마디, 우연히 읽은 책 한권이 힘든 나를 일으켜 세우고, 팍팍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커다란 위안이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젊은 시절 읽은 좋은 책 한권은 삶의 이정표가 되기도 하고, 평생 지니고 갈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만약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가 대학을 다닌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 좋은 책, 특히 많은 시간을 내서 읽어야 하는 고전을 읽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곤 한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무렵, 대학은 최루탄 가스로 가득했고 도서관을 지키고 앉아 책을 읽는 행동이 부끄럽게 느껴질 만큼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절이었다. 시대를 핑계 삼아 좋은 고전 한권도 제대로 못 읽고 대학을 졸업했기에, 돌이켜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요즘 학생들은 또한 그들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취업준비나 영어시험 등을 준비하다보니 고전은 커녕 전공서적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대학을 졸업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인터넷에서 빠르게 검색할 수 있는 요즘에 책이, 그것도 고전이 무슨 소용인가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최첨단의 지식이라 하더라도 그 뿌리는 언제나 인간에 닿아있고, 삶의 진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로 통한다.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얼굴을 보며 전화를 하는 세상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중요한 관심사는 인간, 삶, 사랑, 관계, 그리고 사회에 대한 문제가 아닌가. 고전은 삶과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성찰적인 사고능력을 길러주고 삶의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젊은 날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좋은 스승과도 같다. 세상에 대한 안목을 넓히고 삶에 대한 지혜를 터득하는데 고전을 읽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막막하게 펼쳐진 수없이 많은 가능성과 위험 앞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답답해 할 때,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오래된 책 한권을 꺼내들고 차분히 읽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젊음은 충만할 것이다. 삶과 사람의 가치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삶에 대한 열정과 희망 그리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런 젊은 날은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이 유 정 법학부 교수  webmaster@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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