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우리거잖아! - 인하프레스

안녕? 나는 어느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자그마한 산이야. 주민들이 밤이나 감, 고사리 등을 키우고 수확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감싸주고 있지. 그래서 주민들은 나를 무척 사랑해줘. 그런데 요즘 주민들에게는 큰 걱정거리가 있어. 평소 나의 주인이라고 행세하며 거들먹거리던 사람이 최근에는 나를 멋대로 골프장 용지로 팔아버리려고 해서 말야.
사실 나는 호랑이가 담배피우던 시절부터 주인이란 존재가 없었어. 그렇잖아? 난 마을의 주민들 모두가 아끼며 공동으로 사용한‘동유재산’이었으니까. 그런데,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면서 세웠던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마을 공동의 ‘동유재산’이 있다는 관습법을 인정하지 않았어. 무조건 토지에는 주인이 있어야 한다고 외치며 주인이 없는 토지는 자신들이 멋대로 사용하기 시작했지. 난 겨우 살아남았었고.
해방이 되었을 때 난 일본인들이 내 몸에 멋대로 흠집을 낼까 조바심 내던 마음의 짐을 덜 줄 알았어.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해방 후 세워진 정권에서도 일본과 같이‘동유재산’이란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거야. 그래서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나의 소유권을 당시 마을 유지로 통하던 사람에게 맡겨야 했어. 당시 그 유지는 주민들의 눈치를 보느라 마음대로 주인 행세를 하지 못했던 건 물론이야.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이제 그 일이 잊혀지자 그 유지의 후손이 이제 나를 골프장 용지로 팔아버리려고 하네. 난 지금까지처럼 감이나 고사리, 밤을 주민들에게 맘껏 제공해주고 싶은데 말야. 내가 나서서 사람들에게 ‘난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라고 외치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고 참 답답해.
앗! 그런데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자연환경이나 문화유산들을 보호하고 시민들의 품에 영원히 안길 수 있도록 하는 정의의 사도가 ‘짠’하고 나타났어. 그 사도의 이름은 내셔널트러스트.

내셔널트러스트는

과거 우리 조상들이 함께 관리하며 보존하던 선산, 어장 등의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일컫는 말인‘동유재산’. ‘동유재산’이란 개념은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공동체 사회였다는 특성상 지속적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일제시대를 거쳐 정부 차원에서 주도한 몇 번의 부동산 특별조치를 겪게 되자 ‘동유재산’의 개념은 점차 희미해졌다. 그리고 자연유산이나 문화유산을 경제적 잣대로만 바라보며 무분별한 개발이 이뤄지게 됐다. 이런일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이에 관리없이 방치되거나 무분별한 개발을 추진하는 것에 반대해 전세계적으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 시작됐다. 그 시초는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이뤄진 나라인 영국이다. 1895년 조직된 영국내셔널트러스트 단체는 현재 110년이 넘게 활동해오며 시민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비영리ㆍ비정치 기구가 됐다. 350만이 넘는 회원과 천억원대에 이르는 회비, 영국 전 국토의 1.6%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그 사실을 입증한다.
우리나라에 내셔널트러스트라는 개념이 도입된 것은 90년대 말이다. 물론 그 전에도 우리나라에는‘동유재산’이란 개념이 존재했을 뿐 아니라 광주에서 무등산을 공유화하기 위해서 땅 한평 사기 운동이 진행되는 등 우리나라판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들의 정식 명칭이 내셔널트러스트로 된 것은 90년대 말부터이다. 그리고 2002년 2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단체가 설립됐다.

한국에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 없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무등산 공유화 운동이 완전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아니었다고 김금호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부장은 말한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과 공유화 운동을 구분하는 점은 바로 법적인 근거입니다. 주민들이 스스로 내는 기부금과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우리나라에는 정부가 개발을 하고자 하면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강제수용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어 (공유화 운동으로 확보된 시민들의 자산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일단 내셔널트러스트 단체가 땅을 확보해 놓으면 그 땅은 누구라도 마음대로 매각이나 개발을 할 수 없다는 법적근거를 토대로 하는 운동이죠”.
현재,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그동안의 활동을 통해 ▲시민유산 1호로 강화매화마름 군락지를 ▲2호로 최순우 옛집을 ▲3호로 동강 제장마을을 ▲4호와 5호로 ▲도래마을 홍씨 고택과 ▲권진규 아뜰리에를 확보해 관리해오고 있으며 앞으로 신두리 해안사구를 비롯해 여러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확보할 예정이다. 또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법적 근거가 되는 국민신탁법이 올해 3월부터 시행되기도 하는 등 그 행보가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김 부장은 뜻밖의 사실을 털어놓는다. “요즘 시행되고 있는 국민신탁법은 그 취지가 본래보다 많이 손상돼있습니다. 우리가 법 제정을 추진할 때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으로 확보된 땅의 소유권을 영구히 국민들이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법을 원했습니다만, 현재의 국민신탁법은 강제수용을 할 수는 있되 대신 환경부와 문화재청장이 협의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등 현재보다 그 절차를 더 까다롭게 했다는 정도에서만 그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의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아직까지도 진정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라고 할 수 없다. 그 누구든 원하면 결국에는 개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놨다는 점 때문이다.

법 생기나 마나

국민신탁법 개정은 되려 새로운 걱정거리도 낳았다. “정부가 국민신탁법을 개정하면서 정부 법인의 단체인 국민신탁법인을 별도로 설립했습니다. 때문에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 정부 주도로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하는 단체보다 국민신탁법인에 기부를 하는 것에 더 큰 세제혜택을 줌으로써 기부액을 끌어모으려 유도합니다”.
문제는 이 뿐 아니다.“가장 큰 문제는 확보된 시민유산에 대해 국민신탁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법적 혜택을 국민신탁법인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 국민신탁법인은 우리가 확보한 시민유산을 자신들에게 신탁해야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국민신탁법인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우리는 시민단체다’‘우리는 특수법인이다’라고 말을 바꾸며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어 믿을 수가 없습니다”라는 김 부장의 말은 국민신탁법에 대한 회의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상생의 길로

“국민신탁법인만 국민신탁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상생의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미 관련 단체들과 그 문제점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는 중입니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권한이 축소돼 로컬트러스트 운동이 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김 부장은 “환경을 보호하자는 시민단체라고 하면 시민들은 눈살부터 찌푸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개발이 무조건 안된다고 운동하는 것보다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지향합니다. 또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보존해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고 그 수익금으로 또다른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보존해 나가는 선순환을 지속해 나갈 것입니다”라며 말을 맺었다.

장선영 기자 webmaster@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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