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자살신드롬
하루 평균 36명, 시간당 1.5명꼴로 자살
공통성 있는 일련의 병적 징후로 발전

올해는 여느 해보다 각종 신드롬이 많이 생겨났다. 자살신드롬에서 이효리 신드롬까지 한해가 저물어 가는 현재도 새로운 신드롬이 탄생하고 있다. ‘신드롬이 신드롬을 낳고 있지 않나’라는 부정적 시각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올해의 신드롬이 가지는 문화적 의미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인하대학신문 문화면에서는 올해에 보였던 특유의 현상을 통해 2003년 한국사회를 돌아보고자 한다.

(1) 자살신드롬 원인 분석
(2) 새로운 문화코드, ‘쿨’?!
(3) 워너비와 얼짱, 대중문화의 이면

“우리를 괴롭히는 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속에 있다…온갖 변화를 추구하다가 언제나 같은 느낌으로 돌아오고 새로운 경험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스스로 혈관을 끊고 자살한 고대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동시대의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에밀 뒤르깽의 자살론). 지적 이기주의와 아노미적 사회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올 한해 ‘자살 신드롬’으로까지 불리며 확산된 자살은 세네카의 자조적 변명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양상을 띄고 있다.
　고 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비롯해, 대학생·수험생·주부 등 나이, 직업 불문하고 자살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다. 현재 우리나라는 하루 평균 36명, 시간당 1.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다.

지난 2001년에 비해 6.3%가 증가했고, 1992년의 자살률보다 무려 10배 가까이 불어난 수치다. 또한 자살을 기도한 사람은 실제 자살자의 10배정도 된다는 예측도 나온다. 각 언론에서는 ‘자살’을 관련특집기사로 내보내고, ‘사회적 타살이냐, 개인적 선택이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자살’이 하나의 트렌드로까지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살을 놓고 경제, 정치적 가치로 환원하고, 누구의 책임을 묻는 자체가 무책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일보의 한 문화부장은 최근의 자살 신드롬에 대해 “언론이 조장하는 영향이 크다. 생명에 상대적 가치란 있을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생명을 두고 경제적 불화와 사회구조 탓으로 돌리는 것은 또 하나의 살해다”고 성토한다. 좀 더 근본적인 해석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깽은 자살을 사회적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는 크게 자살 유형을 △이기적 자살(정신질환자가 보이는 현상) △이타적 자살(가미가제 특공대) △아노미적 자살(무통제적 자살)로 나눈다. 자살론과 관련해 최근 자살현상을 두고 강내희 경희대 교수는 세 유형이 혼합돼 있다고 말한다.

“정몽헌 회장이 죽고 난 후, 뒤따라 자살한 80대 노인을 두고 모방자살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하는데 이 죽음을 단순한 모방이라고 말할 수 없다”며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혹은 아노미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개별적 사망이라고 간주해야 옳을 것이다”고 밝힌다. 프로이드가 연구한 자살의 심리학적 분석도 주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규석 전남대 심리학과 교수(한국심리학회 사회 및 성격심리분과장)은 “어떤 대상에 대한 상실이 발생하는 경우, 자기 자신에게로 방향을 돌리는 사례가 많은데 이는 자기 자신에 향한 공격성”이라며 “다양한 불안요소가 내재돼 있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부정확한 상대에 잇따른 자신의 희생이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와 자살이 빈번해지는 것”이라며 분석한다.

하지만 뒤르깽과 프로이드의 사회, 정신분석학적인 해석도 시간당 1.5명 꼴로 ‘저 세상’으로 떠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인 메닝거가 말했듯이 자살은 ‘자신을 죽이고(자해), 죽임을 당하고(타살), 죽는(피살) 행위’인 것이다.

‘어떤 공통성이 있는 일련의 병적 징후(신드롬)’로까지 발전해 가는 자살. 이에 문부식 당대비평 편집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자살에다 신드롬을 붙이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미셀 푸코의 지적처럼 자살은 ‘상상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다. 내년에는 자살 외에도 다른 가능성을 가진 희망의 신드롬이 퍼지길 기원한다”라고.

홍준표 기자  webmaster@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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