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감학원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비

“저녁 먹고 단체집합을 하는데 할당량을 못 채운 아이들은 땅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두들겨 맞았어요. 엉덩이만 때리는 게 아니라 허벅지를 때리는데 얼마나 아픈지, 아주 반 죽어요. 죽어” 1968년부터 1972년까지 4년간 선감학원에서 생활했던 강성근 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고아원을 전전하다 이곳 선감학원에 왔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13살,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당시 선감학원 아이들은 축사, 논밭, 염전에서 일했다. 식사 시간과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온종일 노동에 시달렸다. 끔찍한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바다를 헤엄치기까지 했지만, 탈출은 쉽지 않았다. 다시 잡혀들어온 아이들에게 주어진 건 몽둥이질과 더 혹독해진 노동환경이었다. 그들 중 많은 아이가 목숨을 잃었다. 도심에서 고작 20분이면 도착하는 곳에서,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쓸쓸히 죽어갔다.

일제강점기 시절, 선감학원에 도착한 아이들 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일제의 잔재, 선감학원

1923년 일제는 감화령을 발표한다. ‘감화’란 좋은 영향을 받아 생각이나 감정을 바람직하게 한다는 뜻이다. 조선총독부는 불량 행위를 하거나, 불량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소년들을 감화한다는 명목으로 곳곳에 감화원(感化院)을 설치했다. 함경남도 영흥학교를 시작으로 부산 적기학원까지 전국적으로 감화원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조선총독부는 1942년 감화령을 강화하고, 안산 선감도에 선감학원을 추가로 설치했다.

선감학원은 사실 조선의 독립 의지를 없애고, 나아가 그들을 전쟁의 소모품으로 이용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학원에 있던 아이들은 소년병, 전쟁터의 총알받이가 돼야만 했다. 또 그곳의 시설은 열악했으며, 무제한적인 중노동이 강요됐고, 수많은 인권 유린 사태가 자행됐다.

1945년 해방된 이후에도 선감학원은 사라지지 않았다. 1946년 2월 1일 선감학원은 경기도로 담당이 이관돼 운영됐다. 196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박창원 경기도지사는 선감학원을 바꾸기 위한 대책을 내세웠지만, 정부는 부랑아들을 여전히 청소 대상으로만 생각했다. 주요 도시와 미군 주둔지 등에서 단속된 부랑아들은 계속 잡혀갔다. 심지어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던 아이들까지도 마구잡이식으로 수용돼 강제노동에 혹사당했다. 당시 정부는 부랑아 감소를 근거로 사회문제를 해결했다고 선전했다.

강성근 씨는 열악했던 선감학원을 떠올렸다. “학원에 의무실이 조그맣게 있고 간호사가 있긴 했는데, 사람이 많아서 아파도 진료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병이 조금 심해지면 죽는 사람들이 나와요. 여기서 벗어나고자 헤엄을 쳐 대부도로 도망간다 해도, 탈출한 아이들을 신고한 사람에게 밀가루를 한 포대씩 줘서 금방 잡혔어요”. 당시 그들에게 선감도는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구렁텅이었다. 길을 가다 마주치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그들의 감시관이자 울타리였으며 철책선이자 담장이었다.

1943년 11월 선감학원 야외교육 장면. 칠판에는 ‘지원병이 되어 천황폐하의 은혜에 보답할 것이다’라 적혀있다. 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선감학원 폐교 그 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뻔한 선감학원은 학원 부원장의 아들인 이하라 히로미츠가 1989년 발간한 소설 『아! 선감도』를 통해 다시금 관심을 받게 된다. 그는 소설 서문에 “일본이 범한 전쟁의 죄를 당시 경험한 일본인으로서 고발해 속죄한다”고 적었다. 수면위로 떠오른 선감학원의 과거사는 이후 여러 매체에서 다뤄졌고 2022년 9월, 국가기관으로는 최초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가 유해 발굴을 시작했다. 진화위는 이곳에서 40여 개의 분묘를 발굴해 유해인 치아 210점과 단추 등 유품 27점을 수습했다. 공식적인 사망자는 24명에 불과하지만, 발굴을 통해 45기의 치아와 유물이 수습되면서 기록상 사망자를 넘어섰다.

1970년대 선감학원 원생들이 실내에 모여 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 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선감학원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2020년에 들어서야 구체적인 논의가 되기 시작했다. 경기도는 2020년 초 ‘선감학원 피해자 신고센터’를 설치해 피해자에게 의료비 지원과 치유/상담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같은 해 8월, 경기도의료원 등 6개 병원에서 진료받는 선감학원 피해자에게 연간 1인당 500만 원 범위에서 치료비를 100% 지원했다. 이러한 지원은 2022년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선감학원 피해자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한 이후 더 확대됐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선감학원 피해자를 대상으로 500만 원의 위로금과 월 20만 원의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국가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위로금 지급은 경기도가 최초다.

하지만 모든 피해자를 지원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지적된다. 피해자 지원제도는 1955년부터 1982년까지 경기도가 보유한 원아 대장에 기록된 피해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선감학원 피해자신고센터에 접수된 피해자 신고 245건 중 43건은 기록이 안 돼 있다. 그들은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 선정되지 못했다. 원아대장 기록이전인 1942년부터 13년간 수용됐던 피해자들은 70대 이상의 고령자이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 이들을 지원할 대책이 촉구된다.

선감학원에서 사망한 아이들의 유해가 발굴된 장소

여전히 남아있는 상처

현재 선감학원의 건물은 리모델링 이후 경기창작센터로 바뀌었지만 1층에 마련된 박물관에는 어두운 역사가 기록돼 있다. 이곳에서 강성근 씨를 포함한 실제 피해자들이 가이드를 맡아 방문객들에게 당시의 상황을 전한다. 원생들이 입었던 옷부터 사용했던 식기까지 전시돼 있어 그들의 삶이 엿보인다. 박물관에 있던 곡괭이를 보며 “이걸로 맞으면 정말 아프고, 잘 부러지지도 않는다”고 쓴웃음 짓는 그의 말에서 그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을지 알 수 있다. 선감학원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이동하면 죽은 아이들의 무덤이 있다. “아이들이 죽으면 둘둘 말아서 가마에 싣고 삽으로 땅을 파 우리가 직접 묻어줬어요” 함께 생활하던 아이들의 시신을 직접 묻어야 했던 그의 마음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이곳 말고도 섬 다른 어딘가에 시신이 묻혀있고, 지금까지 밝혀진 것보다 더 많은 시신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도 찾지 못한 수많은 어린 영혼이 저편에 기다리고 있다.

선감학원은 5,000명에 가까운 아이들의 삶을 앗아갔다. 강성근 씨는 “지금도 종종 학원에 잡혀 들어가거나, 방망이로 맞는 내용의 꿈을 꾼다”고 말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뛰놀고 교육을 받아야 할 시기에 아이들의 몸과 정신은 학원에서 점차 병들어갔다. 학원에서 나온 아이들의 삶도 녹록지 않았다. 정신적인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이들은 술에 의존해 하루를 살아갔으며, 건강은 빠르게 악화됐다. 그 아이들은 현재 60~70대 노인이 됐다. 그들은 더 늦기 전에 정부로부터 사과를 받기 원하고 있지만 아직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없다.

선감학원은 폐교된 이후 사람들에게서 잊혔다. 그 긴 시간 동안 선감학원의 피해자들은 이른바 ‘선감학원 후유증’에 시달리며 사회에서 적응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의 찬란했던 시절은 국가로부터 빼앗겼다. 국가적 인권 유린 사태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사과’다. 여러 보상 정책이 실시되고 있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만이 피해자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앞으로 그들의 시간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돼야 한다.

송재혁 기자  12203566@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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