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일본을 경유해 하와이까지 약 1만 km, 수십일의 항해 끝에 도착한 그곳에서 한인은 악착같이 뿌리를 내렸다. 경술국치부터 광복까지의 세월 동안, 그들은 수만 리 타지에서도 ‘한민족’으로서의 민족혼을 잃지 않았다. 그들의 서사시는 인천을 떠나 하와이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하와이 한인 이민의 시작

하와이의 노동 수요는 사탕수수 대량 생산이 시작됨과 동시에 점차 늘어났다. 하와이 원주민의 노동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하와이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를 농장에 투입하기로 한다.

1902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주협회는 고종 황제에게 조선인을 하와이로 노동 이민시킬 것을 건의했다. 이민 조약을 체결한 조선은 이민 담당 부서인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의 수민원(綬民院)을 설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와이 이민에 지원자가 없었다. 아무도 그 길을 편안한 길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미 감리회 선교사 ‘존스’가 조선의 개신교인들에게 하와이 이민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천 지역을 돌며 “대한 사람이 천국인 미국에 이민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주장했다. 그의 순회 홍보 이후 교인들이 지원하기 시작했고 전체 지원자의 절반 이상이 인천 내리교회의 조선인 개신교인들로 이뤄졌다. 1902년 12월 22일, 한국인 노동자들은 인천항을 떠났다. 이민자들은 121명으로 출발했으나 일본에서 102명만이 신체검사에 합격했다. 그들은 다시 겔릭호를 타고 하와이로 향했고 1903년 1월 13일, 마침내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다시 8명이 질병 판정을 받고 그들의 가족을 포함한 16명이 조선으로 송환됐다.

존스는 하와이 감리사에게 이들에 대한 소개장을 써 보냈다. 그러나 애초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 인력에 투입될 계획으로 차출된 이들에게 소개장이 효과가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이민자들은 대부분 사탕수수 농장으로 보내졌다. 이민 알선 업체였던 「동서개발회사」(이하 동서개발)는 꾸준히 하와이 이민자를 모집하며 광고지를 냈다. 광고지에는 ‘기후가 온화하여 더위와 추움이 없으므로 각인의 기질에 합당하’며 ‘모든 섬에 학교가 있어 영문을 가르치며 학비를 받지 아니하’고 ‘일하는 시간은 매일 10시간 동안이며 일요일에는 휴식’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에 더해 ‘직업을 얻기가 용이’하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동서개발이 배포한 광고지의 내용은 거짓으로 점철돼 있었다. 이민 노동자들은 일평균 약 8,600평에 해당하는 임야를 경작해야 했으며 16시간의 중노동을 참아내야만 했다. 농장주들은 노동자들을 노예처럼 다스렸다. 채찍을 휘두르며 이름 대신 번호를 매겨 불렀다.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었다. 동서개발이 노동자들에게 지참금과 여비를 갚게 했기 때문이었다. 하루 30센트에서 50센트 정도의 임금을 받으며 빚을 갚아야 했다. 1903년 5월 12일 『제국신문』에서 「하와이 이민은 ‘노예 이민’」이라는 사설이 실렸음에도 하와이 이민은 계속됐다. 노동이민 금지령이 내려지기 전, 1905년 8월 8일까지 56회에 걸쳐 7,291명이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고 그 중 4,683명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동했다.

하와이 독립운동의 개화

 

국권을 만회할 주의로 합하여 (···) 그런 고로 급선무는 동포를 환란에서 구원하며 교육에 발달케 하여 우리 삼천리의 독립과 이천만의 생활에 무거운 짐을 우리 어깨에 독담할지라도 능히 사양치 아니하노라.   (『해조신문』, 한인합성협회 창립 취지문)

 

하와이에 정착한 한인들은 친목회를 조직해 각자의 연락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는데, 이후 각지에 퍼져 있던 친목회들은 독립운동단체의 초석이 됐다. 1907년 헤이그 특사가 수포로 돌아간 이후 식민 지배가 본격화되자 하와이 한인 사회는 민족단체를 통합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1907년 8월 말, 분립됐던 24개 단체의 대표 30인이 합동발기대회를 개최해 9월 2일 한인합성협회(이하 합성협회)를 결성했다. 단체가 알려지며 협회의 회원 수는 800여 명에 이르렀다.

하와이 한인 사회가 합성협회로 통합되자 북미와의 합동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1908년부터 합성협회는 미국 본토에서 안창호가 결성한 공립협회와 논의를 시작했다. 하나의 단체로 활동할 것을 합의한 두 단체는 1909년 2월 1일 ‘국민회’로 재탄생한다. 이에 따라 합성협회는 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한인 단체가 모두 통합된 것은 머지않아 이뤄졌다. 이는 시대적 흐름이자 한인 사회 일반 한인들의 요구였기 때문이다. 결국 북미에 잔존했던 단체도 국민회 통합에 합의하고 단체명을 ‘대한인국민회’(이하 국민회)로 명명했다. 1910년 2월 10일이었다.  3월에는 이승만이 국민회에 가입한다.

같은 해 8월 29일 한일 강제 합병이 일어나자, 국민회의 58명은 국민회관에 모여 “일본국기에 복종치 않을 것과 죽기를 아끼지 않고 독립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선언한다. 1912년 2월 3일, 국민회는 이승만의 하와이 초청을 추진한다. 여기에는 이승만이 옥중에서 만났던 박용만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 하와이에서 온 서신을 보니 하와이 사람들이 우리 형님에게 바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한번 만나 보기를 원할 따름이다. 다만 한번 가르침을 받고 싶을 뿐이지 다른 소망은 없다’고 합니다. 바라건대 형님께서 헤아려보심이 어떻겠습니까?”

(1912년 11월 1일 박용만이 이승만에게 보낸 편지 중)

 

1913년 9월 한인중앙학원의 교장으로 취임한 이승만은 역사 교육을 통해 애국심과 민족 자긍심을 고취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는 곧 미국 선교부와의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선교부는 교육을 통해 이주 한인들을 하와이 사회에 동화시키려 했지만 이승만은 그들을 훗날 대한독립을 위해 힘쓸 수 있는 인재로 양성하려 했기 때문이다. 미국 선교부는 또 한편으로 이승만에게 은근한 압박을 넣었다. 결국 1916년 이승만은 한인중앙학원 교장직을 사임하고 같은 해 3월 1일 한인여자성경학원을 개교했다. 1918년 9월에는 한인기독학원으로 개칭하며 본격적으로 민족교육을 실시한다.

1909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창립회원들의 모습이다. 대한인국민회는 하와이와 미주 단체들의 연합체로, 미주 지역 독립운동의 근원이 됐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인 단체의 분열과 갈등

하와이 독립운동의 역사가 그리 순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하와이 한인 사회 두 명의 대부 사이에 분열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승만과 박용만은 한때 ‘의형제’라 불릴 만큼 돈독한 우정을 과시했었다. 하지만 박용만이 항일무장 독립운동단체인 ‘대조선국민군단’을 조직하면서부터 갈등은 시작됐다. 이승만은 교육과 외교를 중심으로, 박용만은 무력투쟁을 통한 독립운동을 주장했다.

이들의 노선 분쟁은 점차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이승만은 국민회의 자금 사용을 문제 삼았다. 집행부의 횡령과 착복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이승만 세력은 박용만 세력을 몰아내고 국민회를 장악했다. 이승만 계열의 안현경은 1917년에서 1918년까지 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의 총회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재임 기간 단 한 차례도 대의회를 열지 않고 재정 보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박용만 측은 국민회의 재정에 대한 불투명을 이유로 이승만 측을 하와이 정부에 고소한다. 부정 사실이 폭로되자 이승만 측은 오히려 그들의 무력 항일투쟁 이력을 고발했다. 당시 미국과 일본은 연합을 통해 상호협조적 관계를 만들고 있었고 이승만은 이를 이용하려 한 것이었다.

이후 하와이 한인 사회의 주도권을 둔 대결에서 박용만은 점차 밀려났다. ‘의형제’ 이승만과 박용만은 그렇게 점차 서로의 ‘정적’이 됐다. 이후 박용만은 국민회와의 완전한 세력 분립을 시도했고 1918년 11월 28일 독자 노선으로 변모했다. 미주 한인 사회는 미국 본토의 안창호, 하와이의 박용만과 이승만으로 삼분돼 통합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점차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1919년 3월 1일의 일이었다.

격동하는 독립운동과 하와이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은 곧 일본 군대와 기마경찰대에 의해 무력 진압됐다. 그러나 한번 점화된 만세 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3월 19일에 이르러 전국 13도가 전부 3.1운동에 합류했다. 3월 21일에는 마침내 제주도에까지 퍼져 거족적인 민족운동으로 발전했다. 소식은 국내에 그치지 않고 해외로 뻗어 나갔다.

미주 시각 3월 9일 11시경 국민회 중앙총회장인 안창호와 하와이지방총회장인 이종관에게도 국내의 대규모 시위행진 소식이 알려진다. 『신한민보』는 이 소식을 3월 13일 자 호외 보도로 5면을 대서특필하는데, 당시 모든 기사의 헤드라인이 ‘대한독립’으로 단결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대한독립대운동의 대활동, 수십명이 잡혀 악형을 당할수록 독립불의 난소리는 천지를 흔든다

총과 칼날 아래 독립선언서 크게 광포

절대적 자유 정부를 조직하기로 단명

대한독립만세! 하느님이 도우소서

대한독립선언이 벽력같이 진동하여 온다

삼백만명 서울 평양 각 도시에서 일어나고

 

곧 하와이 전역에도 소식이 퍼졌고 하와이의 모든 단체는 국내외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자 했다. 3.1운동이 한인 사회의 분쟁과 갈등을 한순간에 봉합하고 단결시킨 것이다. 3월 15일 하와이의 부인대표 41명은 호놀룰루에 모여 공동대회를 개최하고 독립운동을 후원할 것을 결의했다. 그렇게 설립된 부인구제회는 먼저 3.1운동 구제금 1천 500 달러를 국내로 송금한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군정서, 대한독립군총사령부, 한국광복군에 후원금을 부쳤다. 이들이 생활을 절약하며 독립운동에 후원한 금액은 20만 달러가 넘는다. 미주와 하와이 지방의 여성들이 가졌던 각오는 1920년 9월 23일 자 『신한민보』에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는 어떤 처지로 어떤 곳에 있던 지 꼭 대한여자들이로소이다. 꼭 대한의 권리라야 나의 권리가 되며 대한의 자유라야 나의 자유가 되며 대한의 행복이라야 나의 행복이 됩니다. (···)

아! 아! 대한의 어머니들이여 벌거벗은 대한을 위하여 입은 옷이라도 벗어주소서.

대한의 누이들이여 주린 대한을 위하여 식은 밥 한 술이라도 먹여주소서.

대한의 딸들이여 목마른 대한을 위하여 냉수 한 그릇이라도 마시게 하소서. (···)

대한이 머리를 들고 겨우 일어서려고 할 때 손을 잡아주소서. 두 팔을 펴서 안아주소서. 따뜻한 가슴속에 깊이깊이 안아주소서.

 

대한부인구제회 회원들의 모습이다. (출처: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

하와이 독립운동, 정체기를 맞다

그러나 하와이 독립운동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와이 한인 사회가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동지회(이승만 계열)의 자본이 자급자족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1925년 12월 13일 동지식산회사를 설립한다. 회사는 초기 자본 약 3만 달러 중 약 1만 3천 달러로 하와이 섬 올라아(Olaa)의 임야 약 1천 200평을 매입했다. 그들은 이 부지를 벌목해 선박 건조나 가구용 목재를 만들려 했으나 재질이 적합하지 못했다. 그러자 화학제작용 목탄을 만들려 했는데, 이마저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미군 당국과의 계약을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벌금 3만 달러의 부채를 떠안게 됐다. 이후 이곳을 농지로 개간하는 것도 실패했다. 결국 동지회는 부족한 자본과 경영 미숙으로 인해 막대한 재정난을 겪게 된다. 이승만은 이를 극복하고자 1929년 9월부터 이듬해 1월 8일까지 북미 지역을 순방하며 자금 확보를 시도했으나 쉽지 않았다. 1930년 10월 회사는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업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1931년 4월, 동지식산회사는 결국 파산한다. 동지회의 경제 운동은 그렇게 실패로 막을 내렸다.

1925년 7월 16일 하와이의 민족 지도자들과 독립운동가들이 과거의 과오를 청산하고 단결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이승만과 박용만도 함께 했다. 이듬해인 1928년 2월 26일에도 한인 사회의 통합을 위한 모임이 마련됐다. 하와이교민단(이승만 계열, 전(前) 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인사들과 대조선독립단(박용만 계열) 인사 등 29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회의를 통해 ‘대한민족통일촉성회’(이하 촉성회)를 조직하기로 의결했다. 조직은 하와이 한인 사회를 단결하고 분열돼 있는 독립운동 기관을 하나로 합치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했다. 해당 단체의 주요 인사들은 이승만 계열과 박용만 계열에서 균형 있게 차출됐으며 분쟁을 막기 위해 중립 측 인사도 포함됐다. 그러나 촉성회의 활동은 활발하게 전개되지 못했다. 얼마 있지 않아 박용만이 피살됐기 때문이다.

1928년 10월 16일, 청년 2명이 박용만을 찾아왔다. 그들은 박용만에게 독립투쟁 자금이 필요하다며 1천 원을 요구했고, 이를 거절하자 권총을 쐈다. 『동아일보』는 10월 27일 자 신문에 그들 중 한 명인 이해명은 의열단원이며 그가 주장하기를 ‘박용만은 변절했고 이에 그를 심판한 것’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하지만 현재 밝혀진 바에 의하면 박용만이 변절했다는 정황이나 증거는 없다. 이승만 또한 ‘박용만이 변절했다’는 소식을 믿지 않았다. 박용만 피살 사건 이후 구심점을 잃은 대조선독립단은 침체에 빠진다. 단체 중 주요 인사들이 참여했던 촉성회도 덩달아 유명무실해지자 박용만 계열 인사들은 이승만 계열 단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1913년 4월, 호놀롤루 기차역에서 이승만(왼쪽)과 박용만(오른쪽)이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의형제’로 불릴 만큼 가까웠던 두 사람은 훗날 ‘정적’이 됐다. (출처: 「이승만의 삶과 꿈」)

하와이 한인 사회, 갈림길에 서다

1930년, 하와이 독립운동계는 큰 위기를 맞는다. 첫 번째 이유는 하와이 독립운동계의 대부 중 한 명이었던 박용만의 죽음이었으며 두 번째 이유는 이승만의 경제사업 실패였다. 이승만은 위기를 타개하고자 독립운동계를 동지회(이승만 계열) 중심으로 재편하려 했으나 이는 머지않아 불발됐다.

하와이교민단장인 손덕인, 미주 대표 김원용과 이승만 간의 불화로 인한 것이었다. 하와이교민단은 이승만이 동지식산회사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동지회와 교민단을 합쳐 교민단의 재산을 처분하려 한다고 의심했다. 결국 이들의 불화는 법정 다툼으로 이어져, 소송전에서 2만 달러가 넘는 재정을 소모하며 치열하게 대립했다. 두 단체 간의 다툼은 ‘민족적 치욕’이라는 오명만 쓴 채 끝났다. 하와이 한인 사회는 통일이 아닌 대립과 분쟁으로 치달았고 결국 동지회와 교민단은 완전히 분열되고 만다. 그 무렵, 북미의 한인 사회 통일운동에 영향을 받은 하와이교민단은 1933년 교민단 해체를 결정하고 국민회를 복설함과 동시에 대조선독립단 통합을 의결해 이듬해인 1934년 통과시켰다. 이후 하와이 독립운동계에서 이승만을 필두로 하는 동지회는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한다.

-하(下)편에서 계속

 

이재훈 기자  ljh1109@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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