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형 편집국장

철학은 생각의 과정이다. 어떤 하나의 생각에 이르기까지, 인물의 삶∙생각∙논리의 흐름을 따라가고 또 그곳에서 자신의 생각을 피워내야 한다. 생각의 결과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생각을 하게 된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각각의 기초학문이 다루는 분야는 달라도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은 다 비슷할 듯싶다. 이를 미루어 보았을 때 기초학문은 필요하다.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스스로 깨달아가는 과정 자체를 공부할 수 있게 해주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토대가 돼야 응용학문과 실용학문이 더 탄탄해지고 높은 성취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기초학문은 내우외환이다. 우선, 밖으로 기초학문은 대체로 편향되게 소비되고 있다. 예로 최근 베스트셀러인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들 수 있다. 철학이 자본 및 시장과 결합해 ‘힐링’을 앞세워 소비된다. 이외에도 기업이나 관공서에서 주도하는 인문학 강좌, 유튜브에서 짧고 간결하게 기초학문을 소개하는 콘텐츠들이 있다. 이 현상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기초학문을 일반 시민들에 말랑말랑하게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 부분만 너무 과도하다는 점이다. 기초학문이 그저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의 일부 ‘이미지’만을 가져와, 제대로 공부한 것이 아닌 자신을 포장하는 ‘패션’이 된 느낌이다. 요는 사회, 대학 외부에서는 예쁜 인문학이 소비되고 유통된다. 소위 말해 ‘돈’이 된다.

기초학문의 내부 문제는 대학이 기초학문을 홀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지 1307호 ‘소외되는 기초학문, 대학의 근간이 흔들린다’ 보도에 따르면, 1인당 연구비는 인문계열 1,460만 원, 공학계열 1억 1,470만 원으로 공학계열이 8배 이상 많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본교는 2015년 당시 프라임 사업을 추진하며 문과대학 구조조정 안을 발표하기도 했었고, 문과대∙자연과학대의 입학정원은 꾸준한 감소 추세에 있다. 기초학문은 연구하기도 어려운 형편이고, 학생들이 입학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대내외로 기초학문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정부는 무전공∙계열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거는 모양새다. 교육부는 대학 재정 지원 사업과 연계해 무전공∙계열제 입학을 추진하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주어 대학을 휘어잡는다. 학생의 전공 선택권 보장이나 시대 변화에 맞는 인재 양성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 현실상 정책이 취지대로 가기는커녕, 기초학문을 고사하는 방향으로 고꾸라질 확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이미 작년 3월 들어온, 본교 자유전공학부의 첫 입학생 중 대다수가 취업이 잘되는 학과를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무전공∙계열제 기조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정책을 추진했을 때 부작용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촘촘하고 세심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대학 본부도 기초학문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환경을 반드시 조성해야 한다. 기초학문 또한 게을러서는 안 된다. 전공 간 칸막이가 무너지고 시대가 변화함을 인정하여,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급변하는 사회 요구에 어떻게 부응할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박재형 편집국장  qkrwogud0@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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