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은 인생을 살아가며 선택을 강요당하는 쪽에 가깝다. 마치 공장에서 공산품을 찍어내듯이 틀 속에 갇혀 살아간다. 이러한 경향성이 120년 전에는 얼마나 더 혹독했을지 상상해 보면 숨이 막혀온다. 그러나 그 시대에도 ‘개인’의 의미와 정립을 위해 살아가며 글을 쓰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인 나쓰메 소세키다. 그의 철학이 녹아 있는 정수, <그 후>에 대한 이야기다.

작중 ‘다이스케’는 부유한 명문가의 둘째 아들이다. 고등교육까지 받은 그는 일자리를 구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집안의 자본(빵) 덕에 삶을 연명하면서도 빵을 위한 노동을 혐오하고 ‘노동을 위한 노동’, 노동 그 자체를 추구한다. 그러나 정작 그는 빵과 물에 굶주린 적이 없다. 또한 그는 아버지가 강요하는 ‘정략결혼’도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는다. 이리저리 둘러대고 대답을 회피할 뿐이다. 자신을 가두는 울타리를 탈출함으로써 저항하기보다 울타리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다이스케의 친구 ‘히라오카’는 실직 이후 변변한 직장도 없이 술집을 전전하며 돈을 낭비하고, 그의 헤픈 씀씀이 때문에 아내 ‘미치요’는 평소 앓던 지병을 치료하지 못한다. 히라오카가 다시 직장을 구하고도 가정을 내팽개치자, 다이스케는 의무를 저버린 그에게 분노를 느낀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미치요가 다이스케에게 돈을 빌리러 찾아오며 왕래가 잦아질 때쯤 다이스케는 문득 그녀에게 품었던, 잊고 있던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과거를 회상하며 미치요를 사랑하고 있었음에도 애써 그녀와 히라오카를 이어준 것을 후회하고 그녀를 고통에서 구해줄 것을 다짐한다.

여름비가 쏟아지던 날, 다이스케는 미치요에게 ‘자신과 함께 살아가자’ 전한다. 그는 이 선택이 가족과의 의절, 친구와의 절교를 불러올 것을 알고 있었다. 빗소리로 가득 찬 방 안에서 미치요를 기다리고, 폭우를 뚫고 찾아온 그녀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후 미치요의 병세가 심해져 몸져눕자 다이스케는 본인이 그토록 혐오하던 ‘빵을 위한 노동’을 찾아 떠난다. 마침내 그가 울타리를 뛰어넘는 순간이다.

소설은 다이스케의 비도덕적 선택으로 인한 파멸보다 그가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불륜에 대한 서사’보다 ‘다이스케가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 더 나아가 ‘당신이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하고 물음을 던진다.

소설 제목 그대로, ‘그 후’ 다이스케가 어떻게 됐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작가는 책의 제목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그의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 울타리에 갇혀 살기보다 뛰어넘기를 선택한 다이스케. ‘배부른 정신적 고통’보다 ‘배곯는 정신적 풍요’를 추구한 다이스케. 어쩌면 그는 정신적 풍요를 통해 배부름을 얻을지도 모른다.

이재훈 기자  ljh1109@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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