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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담론] 껍데기는 가라
장서윤 기자

새로운 정책은 그 본질이 제대로 담길 때 비로소 알맹이가 된다. 본질이 외면되면 어떠한 의미도 남기지 못한 채 그저 특정 개인과 집단의 입장만 부풀린 껍데기 정책이 될 뿐이다. 껍데기 정책들은 항상 그럴듯한 명분만 내세워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다. 결국 또다른 사회문제와 갈등이 반복된다.

한국 교육은 경쟁이 되풀이되는 굴레 속에서도 변별력 있는 시험을 위해 여러 시도를 해왔다. 올해는 수능을 5개월 앞두고 정부의 지시에 따라 교육부가 ‘킬러문항 배제’라는 카드를 들었다. 이 정책은 시험에서 변별력을 두기 위해 출제된 킬러문항이 사교육 카르텔 형성의 주범이라는 주장에서 출발했다. 바야흐로 문제가 수험생을 옥죄고 죽여가는 시대 속에서 초고난도 문제를 삭제하고 적정 난이도를 확보하면, 킬러문항이 불을 지핀 사교육시장의 열기와 수험생들의 경쟁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게 정부의 논리였다.

그러나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등장했던 이 정책은 올해 수능에서 그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킬러문항을 배제하면서도 평가로서 변별을 유지하겠다던 계획은 ‘준킬러’라고 불리는 중고난도 문항을 대폭 늘어나게 만들며 ‘역대급 불수능’의 타이틀을 남긴다. 최상위권은 가려냈을진 몰라도 이번 시험은 중상위권에 포진된 대부분의 수험생들에게 혼란과 불신을 가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말을 믿고 묵묵히 공부했으나 그들을 반긴 건 ‘매력적 오답’ ‘신킬러’ 따위로 불리는 문제들의 향연이었으니. 13년 만에 다시 현역 수능 만점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곧 이를 증명한다. 이제는 곤히 공부하는 수험생 옆에서 신나게 봉창만 두들겨 팼던 정부를 누가 순순히 믿겠으랴? 혼돈의 문제들은 사교육 판에도 기름만 부어대는 꼴이 됐다. 공교육만으로는 이번 수능 같은 예상 밖의 변수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이번 사태는 본질을 무시한 정책이 왜 실패하는지를 정확히 보여줬다. 윤 정부가 킬러문항 배제를 지시하기까지. 본인의 발언이 남은 5개월 동안 모든 걸 건 수험생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사교육 의존을 낮추는 방법에 킬러문항 배제가 과연 최선인지를 진정으로 고민해봤을지 의문이다. 결국 사교육 카르텔을 운운하며 성급히 띄운 이야기는 알맹이가 아닌 껍데기 정책을 낳았다. 이쯤 되니 그들이 정책을 통해 담고자 했던 메시지가 궁금해진다. 그들이 원했던 건 킬러문항 배제가 사교육 의존도를 낮출 것이라는 기대인가? 공교육이 부실하니 앞으로 알아서 방법을 찾으라는 간접적인 조언인가? 아니면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을 잠시나마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었을까.

자라날 학생들에게 더 큰 꿈을 위한 동력을 불어넣어야 할 교육이 힘을 잃어버렸다. ‘변별’은 실력 구별을 넘어 낙오로 변질됐고, 살아남기 위해 수험생들은 사교육으로 뛰어드는 고통을 참아내는 현실이다. 달라진 게 없다. 백년지대계 교육의 본질을 외면한 채 급한 불만 끄는 것에 치중된 정책은 정책이라 부를 순 없다. 수험생들의 불안감과 경쟁심을 갉아먹고 사는 한국 교육이 이제는 중심을 잡기 위해서 그 답을 ‘수능 난이도 조정’에서 찾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중장기적으로 접근하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장서윤 기자  jangseoyun20@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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