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형 편집국장

바느질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매듭을 만들고, 사슬을 잇고, 기둥을 쌓아 올리는 직조(織造)의 과정은 초심자에게 끊임없는 오류를 겪게 한다. 행여나 실과 바늘이 잘못 엉키기라도 하면 그렇게 곤혹스러울 수가 없다. 이렇듯 떼려야 뗄 수 없는 실과 바늘의 관계는 우리 인간의 언어와 세계의 관계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언어가 세계의 대상을 구성한다는 관점이 있다. 언어로 말할 수 없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는 소쉬르의 구조주의 이론이다. 언어는 시니피앙(기표, 표시하는 것)과 시니피에(기의, 표시되는 것)로 이루어져 있으며, 둘의 관계는 자의적이다. 예로 사과에 대해, 우리는 사과라는 대상을 볼 때, ‘사과’라는 기호(시니피앙)를 사용하고 ‘사과’의 이미지(시니피에)를 떠올리기로 사회적 약속을 한 것뿐이다. 여기서 잠시, 시니피앙을 ‘사과’라는 언어적 기호라 지칭하고, 시니피에는 ‘귤’의 이미지라고 한다면 어떨까. 분명 어디선가 결함이 발생했다. 결함은 시니피앙과 시니피에가 필연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관점은 사실 느슨한 실의 매듭처럼, 금방이라도 풀어질 수 있다. 언어와 세계는 서로를 절대적이거나 객관적인 방식으로 지시하지 않는다. 여기서 소쉬르는 동일한 언어 기호가 다양한 의미로 드러나는 변화양상을 설명하기 힘들다는 한계에 마주한다. 이를 극복한 철학자는 비트겐슈타인이다. 그에게 있어 언어란 단순히 기호로서가 아니라 사용과 실천, 그리고 맥락 속에서 의미를 부여받는다. 또한 그는 언어와 세계의 한계를 명확히 구분 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은 더욱 명료하게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은 언어와 세계의 관계에 대해 시사점을 던진다. 철학적 층위에서, 세계 밖에 있는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 등은 난센스다. 이들은 가치 없는 게 아니라 알 수 없다. 예로 진리나 본질 그리고 자아 등이다. 플라톤 이후 기존의 철학자들은 언어의 잘못된 사용으로 불변하는 진리 따위를 탐구해 왔다. 이처럼 인문학은 확인할 수 없는 언어를 남용한 것이다.

인문학이 언어적 혼란을 초래했다면, 사회과학은 언어를 오염시켰다. 현실적 층위에서, 정치를 예로 들면 현 대통령은 ‘공정’을 말한다. 그러나 그 공정은 일반 대중이 보기에 법조계에만 적용된다. 이 과정에서 법조계를 제외한 모든 집단은 ‘카르텔’로 규정됐다. 언론은 오염된 언어를 대중에게 전달한다. ‘공정’과 ‘카르텔’ 모두 정치 수사로 오염돼 본질을 잃어버린 언어다. (비단 현 대통령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전 대통령도 ‘적폐’를 말했다. 이 또한 오염됐다.)

현 한국 사회에서 언어와 세계의 바느질은 단단히 엉키고 꼬여,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가늠이 안 된다. 언어를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인 인문학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희미해졌고, 사회과학의 대표자들(정치, 언론)은 언어 오염의 첨병을 자처한다. 한국 사회가 짜 맞춘 언어의 직조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슬은 파헤쳐지고, 기둥은 무너진다. 이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박재형 편집국장  qkrwogud0@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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