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기획] 빛이 낯선 그들, 그 손길 안에서

청춘.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 우리는 지금 청춘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모든 청년이 보내는 삶들이 꼭 푸르지만은 않을 테다. 어떤 청년에게 불어온 시련들은 혹독한 추위와 겨울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청년을 깊고 깊은 겨울잠에 빠지게 한다. 여기 이 작은 나라에도 세상의 따뜻함이 필요한 청춘들이 있다. 방황하는 청춘들, 제대로 된 수조차 파악되지 못한 청춘들, 지금도 어딘가에서 외로움을 삼키고 있을 청춘들… 우리 사회는 이들을 ‘고립·은둔 청년’이라 부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타인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하고, 한정된 장소에 머무르며, 사회적 교류를 단절하고 있는 청년들을 고립·은둔 청년으로 정의한다. 국무조정실이 실시한 ‘2022 청년 삶 실태조사’ 결과에서는 국내 은둔형 외톨이 청년 규모를 약 24만 명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이러한 통계는 어디까지나 막연한 추정일 뿐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고립·은둔 청년의 정확한 숫자조차 파악되지 않았다.

 

방황하는 청춘들의 이야기

두더집 내부 모습. 좌우에 위치한 방에서 상담이 이뤄진다.

지난달, 기자가 찾아간 고립·은둔 청년소통공간 ‘두더집’. 그곳에서 만난 A씨의 은둔생활은 약 5년이다.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아픈 아버지를 잃은 것에 대한 죄책감과 장남으로서 살아간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힘들어했다. 그러나 A씨는 정신병원에서 상담받거나 약을 받는 건 부끄러운 행위라는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며 오랜 시간 자신을 방치했다. 결국 방치된 마음들이 조울증과 공황장애로 번졌다. “친구들은 벌써 군대에 가는데 주위에서는 ‘너는 왜 방 안에만 있냐’고 그러니까 스스로한테 압박감도 많이 왔어요. 뭘 먹어도 맛도 안 느껴지고, 뭘 봐도 재밌지 않았어요. 사는 것 자체가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대중교통을 탈 때도, 편의점에 갈 때도 보여지는 모습을 신경 쓰고 힘들어했던 은둔 청년에게는 방 밖으로 나서는 것 자체가 큰 결심이고 오랜 회복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청년 B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B씨는 은둔 생활에 영향을 미쳤던 무관심한 가정환경 이야기를 들려줬다. 불안한 가정환경에서 정신적인 지지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B씨는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했다. 주변에 인간관계가 생겨도 쳐낸 적도 있고, 따라오는 타인의 시선에 불안을 느끼기도 했다. “청소년 시절을 그렇게, 거의 혼자 보냈어요.” 담담하게 전하는 그의 한 마디 마디마다 그가 은둔했던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겪은 외로움이 묻어 나왔다.

물론 그가 사회를 향해 도움의 손길을 구한 적도 있었다. “도움을 구하고 싶어서 기관도 찾아갔어요. 그러다 극복에 대한 부담이 심해지면 잠시 연락을 멈추고 집에서 괜찮아질 때까지 있었죠. 다시 괜찮아져서 연락했는데, 어떤 기관에선 ‘너는 이미 연락을 끊고 도움도 안 받겠다고 했으면서 왜 다시 연락하냐’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용기를 냈던 청춘에게 돌아오는 건 차가운 대답뿐이었다. “내가 사는 사회지만 소외감을 많이 느꼈어요.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저를 도와줄 사람도 없고,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몰랐어요.” 아직까지는 고립·은둔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청년들의 일상을 회복하는 쉼터 같은 존재, 두더집

‘두더집’은 사단법인 ‘씨즈’가 운영하는 고립·은둔 청년 활동공간이다. 2022년 8월, ‘말랑말랑 모임터’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공간을 대여하며 활동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올해 3월부터는 안정적인 주택인 ‘두더집’을 탄생시켜 활동을 시작했다. 이곳은 특별한 규칙도 방문 신청도 없다. 말 그대로 고립·은둔 청년들이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 누군가와 함께 취미를 즐기고 싶을 때 방문해서 다양한 활동들을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두더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은혜 ‘씨즈’ 이사장은 “두더지는 주로 땅굴 속에서 삶을 살지만, 가끔 땅 위에 나타나고, 이는 청년들도 마찬가지”라며 “은둔하고 고립된 상태 속에서 살아가지만, 가끔 나와서 교류하고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도록, 그리고 자신의 땅굴로 다시 파고들어도 안식처에서의 경험이 세상과 그들을 연결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 되고자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공간의 명칭을 설명했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은 청년들이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해 먹는 ‘점심밥 모임’이 진행됐다. 어디선가 솔솔 풍겨오는 파스타 냄새와 함께 옹기종기 모여 식기를 배열하는 청년들의 모습에는 활기가 가득 차 있다. “매주 금요일은 이렇게 점심을 함께해서 먹어요.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일상과 사회적 관계 회복의 시작이거든요.” 식사를 마치고 자세히 돌아본 두더집도 마찬가지였다. 거실 한 편에 나열된 보드게임들,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파, 창문 너머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2층 공간까지. 그저 사람들과 부대끼고 직접 만든 음식을 먹으며, 늦은 오후 햇살을 받고 소파에서 잠잘 수 있는 일상의 작은 회복들이 ‘두더집’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세심한 시선으로 안정을 준다는 건

“마음이 놓이지 않는 쉼터나 기관도 있었어요.” 실제로 A씨가 그동안 다닌 공간 중에선 따로 신청받아야 출입이 가능한 공간도 있었다. 제대로 된 지원을 받기 전 상담이나 심리검사가 필수인 곳도 있었으며, 치유가 목적이었지만 청년 취업 포스터들이 벽 게시판에 무수히 붙어 취업에 대한 압박감을 부추기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방 밖으로 나온 것조차 큰 결심이 필요했던 청년이 지원받기까지 거쳐야하는 절차들은 복잡했다. 그곳에서 은둔 기간을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취업에 대한 지원들은 오히려 청년들에게 부담이 됐다. “고립되고 은둔하는 청년들이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노력이나 행동이 타인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을 깨달을 때예요. 무조건적인 금전적 지원은 좋지 못한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청년들이 힘든 삶을 견뎌낼 수 있을 만한 탄력을 길러내도록 지원이 필요한 거죠.” A씨는 고립·은둔 청년들의 최종 목표나 달성도 다른 청년들과 다름없는 ‘취업’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취업으로 가기까지의 과정과 발판으로서,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인내와 격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취업 상담, 심리 검사가 필수가 아닌 두더집의 프로그램들은 청년들에게 느리지만 효과적인 도움을 줬다.

두더집이 고립·은둔 청년에게 보내는 이해의 시선들은 아직 첫걸음일 뿐, 현재 고립·은둔 청년의 존재를 인식하고 시범 정책에 관해 관심을 보이고 계획하고 있는 곳은 서울특별시와 광주광역시뿐이다. 이은혜 이사장은 “앞으로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정책을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가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사회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먼 지역에 사는 은둔 청년이 두더집의 문을 두드린 적도 있었다. “지방에는 이런 곳이(두더집이) 없으니까⋯ 두더집에서 같은 친구들과 교류하는 활동들이 부럽기도 하고, 같이 참여하고 싶어서 대학교 방학 기간을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간 친구가 있어요. 이런 걸 보면 두더집이 수도권인 서울에만 있는 게 좀 아쉽기도 하죠.” 결국 청년들에겐 우리 사회가 편안함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언젠가 다가올 청춘의 봄을 위하여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 인터뷰이를 포함해 두더집에서 만났던 청년들과 함께했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같은 취미를 공유했던 청년, 기자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던 청년, 수줍게 자기소개를 했던 청년, 이들이 모여 함께 음악을 듣던 거실의 분위기까지. 갇혀 있는 세상을 깨고 성장으로 나아가는 연약한 청춘들이 가졌던 용기와 결심을 헤아려 본다. 이제는 그들의 용기 있는 걸음을 위해 우리 모두가 나설 차례다. 방황하는 청춘들의 회복을 적극적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정책들이 만들어지길. 연약함마저도 존중해 줄 수 있는 시선이 언젠가는 찾아올 봄에 꽃을 피워낼 청년들에게 필요한 겨울의 포근함 같은 존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장서윤 기자  jangseoyun20@inha.edu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서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