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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광명으로 밝아올 새벽을 기대하며

 

임화문학상을 수상한 김명인 교수

인간은 모두 저마다의 꿈을 안고 살아간다. 힘든 현실을 마주하고 있더라도 희망찬 미래를 그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희망의 끈을 놓기란 쉽지 않다. 여기, 사회를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다. 힘든 시기가 와도 작은 실마리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최근 임화문학상을 수상한 김명인 씨는 비평가이자 교수로서 사회를 탐색한다.

 

임화’이름이 갖는 의미

 

김명인 교수(이하 김 교수)는 올해 8월, 비평집 <폭력과 모독을 넘어서>으로 임화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정년을 맞아 강단을 떠나는 만큼 교수직을 달고 있을 때 받은 상이기에 한 층 더 의미 있는 수상이다. 그는 이번 수상에 대해 “어떤 다른 유명한 상보다 더 가치 있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임화문학상’은 문학가이자 평론가, 카프의 서기장이었던 ‘임화’의 이름을 딴 상이다. 임화는 민족문학을 주요 화두로 삼은 인물이었다. 김 교수 역시 민중문학, 민족문학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임화의 후예’라는 감각을 갖고 있다. 비평, 문학사 연구, 시 창작 등 여러 분야에서 최고 수준이었던 임화는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인물이기도 하다. 대한민국과 북한 두 곳 모두에서 거부당한 인물이기에 분단의 현실을 체현하고 돌아간 인물로 표상되기도 한다. 김 교수는 그의 삶으로부터 분단을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느끼고 있었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찾아온 절필

90년대에는 급진적인 꿈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꾸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었다. 또 민중문학의 중요한 한 축은 노동자였다. 그들은 노조가 생기기를 열망했다. 군부 독재가 물러나고 노조가 생겨나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가는 과정에서 그들은 사회 개혁 문제에 있어 소극적으로 변해갔다. 이로 인해 사회 개혁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소수로 밀려나고 고립되기 시작했다. 민족민중문학을 지향하는 김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대중들이 급진적 개혁을 원하지 않으므로 전면적인 성찰과 검토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에 장기적인 모색기에 들어갔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노동 생태의 변화에 대해 김 교수는 “우리는 민주화가 사람들의 민주화 운동을 통해 찾아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세계사적인 흐름으로 볼 때 독재의 붕괴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기론, 독재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는 폐쇄적 사회를 만든다. 이때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전세계적으로 휩쓸었고 독재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독재의 종말 이면에는 신자유주의라는 원동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IMF 사태가 발생하면서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만인이 행복한 체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많은 사람의 빈곤과 극소수 사람들의 부의 축적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았다”며 “빈곤에 대한 책임을 개인으로 돌리고 분배의 문제에도 소극적인 사회가 돼버렸다”고 평하며 신자유주의 체제가 불러온 여파를 설명했다.

 

이후 다시 펜을 잡고

김 교수는 2000년대에 들어서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비평가로서 복귀했다. 주저앉기보다 희망하고, 꿈꾸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모색해야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럼에도 정확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적극적으로 글을 쓰지 못하고 주춤거리기도 했다. 그때 그가 깨달은 것이 신자유주의 체제의 문제와 불완전한 민주화의 문제였다. 민주화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가 들어섬에 따라서 사회가 피폐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 개혁을 지향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타파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인지, 어떤 방법인지를 알 수 없어 어려움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는 문화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그중에서도 여성 작가들을 주목하고 있다. 김 교수는 “문학은 90년대를 지나며 개인주의적 성향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양극화된 사회 속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다”며 “이런 국문학은 개인주의적, 나르시시즘적 경향을 끝내고 한 단계 넘어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가 생각하기에 소설계에서 비주류였던 여성들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한국 소설계의 괄목할 만한 성장이었다. 자신의 틀에 갇히지 않고 연대하고 생각을 나누기 시작했다는 점을 주목한 것이다.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 헤게모니는 자본주의 선택 외에 다른 선택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개인주의적 사회도 신장해 왔다”며 “그것이 여러 선택의 가능성을 막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운동이 일어나고 많은 소수자들이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주류문화인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민중적 대항문화의 핵심이다. 음악도 대항문화가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를 대표적인 예시로 꼽았다. 노래는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을 비추며 시작한다. 가난한 이들은 배를 굶주리고, 죽지 않기 위해 ‘폭도’를 자처하기에 이른다. 후반부에 이르러 자신들은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 울부짖는다. 권력자들이 불편해하는 이야기를 꺼내고 담론을 만드는 가사를 써내고 있는 것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도 그렇다. 영화가 주류의 각광을 받긴 하지만, 봉준호의 <기생충>도 사회의 모순적 구조를 풍자적으로 잘 나타낸 경우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전방위적이고 문화적인 저항이자 투쟁이라고 밝혔다. 그는 비평가로서 혹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더 나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사회를 바꾸기 위해 역동하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중이었다.

 

문학의 방향을 고찰하다

7~80년대 문학은 숭고한 것, 윤리적인 것이었고 이른바 ‘큰 문학’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들어서고 ‘큰 문학’은 힘을 잃었다. 개인의 이야기가 더 주목받고 문학시장이 커지자 ‘문학’은 상업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대중의 수요와 자본주의의 흐름에 따라 문학상업주의로 바뀐 것이다. 김 교수는 “문학 작품이 돈을 버는 것이 창피하다는 인식은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문학의 엄숙주의를 내놓던 <<문학과 지성사>>나 <<창작과 비평>>에서도 엄숙주의는 사라지고 서로 잘 팔리는 작가를 내놓기에 급급해졌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그는 비평집에서 ‘더 이상 문학에서 혁명을 구하지 않겠다’ 말했다. 이는 문학이 사회를 지도하는 비평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말하는 것은 이른바 ‘꼰대 비평’”이라 밝혔다. 그렇지만 비평은 그와는 별개의 지평이다. 비평과 문학은 뗄 수 없는 관계다. 김 교수는 “문학이 성장하기 위해서 작가는 비판 받아야 하는 대상이지만 현재의 시장은 베스트셀러 작가를 비판하지 않는다. 그리고 책을 팔기 위해 베스트셀러 작가를 따라 쓰니 복제품만 ‘무진장’ 나오게 된다”고 평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 비평의 공론장이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더 넘어서 비평가들은 작가와 작품에 대해 칭찬만 하는 행태가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나아갈 사람들에게

김 교수는 말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것이 무조건 옳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면 좋겠다. 삶에는 여러 선택의 가능성이 존재하고 다른 선택이 더 좋을 수 있다. 불가피한 선택은 있을 수 있겠지만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 나의 삶, 나의 선택이 다른 것들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고찰해봐야 한다.”

그의 개혁 정신 발현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최고라 일컫고,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다 벌어진 폐해를 온몸으로 겪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그조차도 스스로 명답을 내릴 수 없지만, 그는 여전히 어딘가에 있을 답을 찾고 있다. 정년을 끝으로 강단에서 물러나고도 그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이재훈 기자  ljh1109@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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