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듣는 음악에는 주로 자신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 신나는 파티 분위기가 담긴다. 그중에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스테디셀러라고 불릴 정도로 대중에게 익숙한 주제다. 그러나 요즘 새로운 주제의 노래들이 떠오르고 있다. 바로 세계관이다.

세계관은 창작자가 상상력을 동원해 만들어 낸 고유한 가상 세계를 의미한다. 즉 현실과는 다르지만 창작물의 배경이 되는 독특한 세계라 볼 수 있다. 2010년대 초반까지 나온 아티스트들의 세계관은 주로 노래가 아닌 뮤직비디오에서 다뤄졌다. 그러나 최근, 많은 아티스트들은 세계관을 직접 가사에 녹여낸 참신한 주제의 곡을 대중에게 소개한다.

세계관을 주제로 노래하는 대표적인 예시는 ‘에스파’다. 에스파는 그들이 구축해 낸 세계 속 악당인 ‘블랙맘바(Black Mamba)’를 퇴치하는 ‘ae(가상현실 속 자신)’와 에스파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풀어낸다. 악당의 이름을 딴 데뷔곡 ‘Black Mamba’에서 에스파는 자신과 ae의 연결을 끊어내려 하는 악당 블랙맘바를 찾아 나서고, ‘Girls’에서는 마침내 블랙맘바를 처치하는 데 성공한다. 이처럼 그들의 노래는 사랑도, 실제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 세계관 속 그들의 이야기다.

‘ENHYPEN(엔하이픈)’ 역시 세계관을 주된 서사로 가사를 풀어나간다. 엔하이픈의 세계관은 충성을 바쳤던 망국의 공주로부터 힘을 받아 뱀파이어가 된 그들이 미래에 다시 만난 그녀를 지키기 위한 여정을 그려낸다. 이외에도 ‘엔믹스’, ‘에이티즈’, ‘빌리’ 등 많은 그룹이 참신한 세계관을 주제로 노래한다.

지금은 널리 차용되는 ‘세계관’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반영된 건 2012년에 나온 EXO였다. ‘초능력자’라는 컨셉을 기반으로 발매한 뮤직비디오는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며 팬덤 내에서 큰 열풍을 일으켰다. 팬들이 세계관을 직접 해석하며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래 속 숨겨진 이스터에그를 찾아내고 의미를 해석하도록 의도한 기획사의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이렇듯 영상 속에만 존재하던 세계관은 4세대 아이돌을 기점으로 범위가 확장돼 노래 가사에 직접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팬덤 사이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은 세계관은 결국 대중에게도 녹아들었다. 세계관이 담긴 곡들이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아이돌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웹툰과 놀이공원 L사, 의류 브랜드 S사의 콜라보가 그 증거다. 10년 전 생소했던 세계관은 단순히 뮤직비디오를 위한 컨셉이 아닌 하나의 장르를 구축해 냈다.

세계관을 통해 그들이 전달하는 이야기는 여태껏 접해보지 못한 참신함을 띤다. 처음엔 의아하지만, 들을수록 중독되고 흥미로운 노래들. 다음엔 어떤 특색 있는 내용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궁금하지 않은가?

김민진 기자  12212895@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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