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다. 취업이 힘들어 직장에서 멀어진다. 직장을 얻을 수 없으니, 돈을 써야 하는 상황에 제약이 생긴다. 여기저기서 출입 금지당한 청년은 홀로서기를 이어가고 있다. ‘평범하게 살기’는 취업을 전제로 한다. 취업이 힘들다면 행복할 자격도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행복을 고민하다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떠올랐다. 우울을 겪을 때 접한 그 소설 속 구보는, 행복이 어딘가 분명히 존재하리라는 듯이 온종일을 서울 시내를 걸어 다녔다. 구보가 찾은 그 행복을 갖고 싶은 마음에 구보를 따라나섰다.

청계천 구보하기

청계천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구보의 여정은 그의 집이 있었던 청계천에서 시작된다. 당시 청계천은 조선인과 일본인을 나누는 경계였다. 청계천 남쪽에 일본인들이, 북쪽에 조선인들이 모여들었고 남쪽에는 미쓰코시 백화점, 쵸우지야 백화점이 들어섰고 북쪽에는 화신백화점이 들어섰다. 조선이 근대적 자본주의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조선’은 ‘전근대’가 되기 시작했고 그는 근대와 전근대 어느 사이에도 머무르지 못하는 ‘방황’의 모습으로 표상된다.

아들은 지금 세상에서 월급 자리 얻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말한다 (...)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또 동경엘 건너가 공부를 하고 온 내 아들이, 구하여도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1930년대, 조선인이라면 엘리트 지식인이라도 취업이 쉽지 않았다. 강경상업학교 상위 10%의 우등생이라도 20명 중 3명이, 상위 10~30%의 39명 중 1명만이 취업할 수 있었다. 그만큼 구보도 취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2023년의 취업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낙타로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격인 데다, 취준생 사이에선 ‘지금이 최악이다’라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다. 구보도 취직을 이어가는 군중들 사이에 있지 못하고 소외됐다. 평범한 행복은 찾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구보는 고독을 느낀다.

그러나 자기와 더불어 그곳에 있던 온갖 사람들이 모두 저 차에 오른다 보았을 때, 그는 저 혼자 그곳에 남아 있는 것에, 외로움과 애달픔을 맛본다. 구보는, 움직인 전차에 뛰어 올랐다.

그는 군중들 사이로 들어가 고독을 없애보고자 한다. 그럼에도 구보의 고독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취직에 실패한 실업자로 남은 구보는 취직을 통해 행복을 얻는 군중 속에서 행복을 얻지 못한다. 취직에 성공한 사람은 행복하고, 취직에 실패한 사람은 불행하다는 이분법이다. 그때의 전차는 사라지고, 수십 대의 버스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군중을 실어 나른다. 버스에 타 일상을 살아가는 군중을 보며 ‘취업에 성공한 저이들은 행복할까, 행복하다면 얼마나 행복할까’하고 그 행복의 양도 계산해 본다. 돈이 전부가 된 세상에서, 돈을 버는 이들은 세상을 가진 기분일 것이다.

종로 거리부터 경성역 구보하기

미쓰코시 백화점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고독을 없애지 못한 구보는 다시 전차에서 내리고 ‘자기는, 대체, 얼마를 가져야 행복일 수 있을까’ 생각하며 걷는다. 조선은행에서 내린 그는 거대한 백화점을 봤을 것이다. 당시 종로에는 손에 꼽히는 거대 백화점들이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백화점들이 모여있다. 그중 신세계 백화점은 미쓰코시 백화점의 건물을 그대로 이어받았고, 초우지야 백화점의 터에는 롯데 영플라자가, 화신백화점의 터에는 종로타워가 들어섰다. 현재의 신세계 백화점 본점은 주변의 고층 빌딩들에 묻혀 큰 건물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전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대규모 건물이었다. 그때 구보의 눈에는 사치품을 몸에 두른 사람들이 지나갔을 것이다. 돈은 누군가에는 무거운 즐거움을, 누군가에게는 무거운 고통을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고통이 나만은 피해 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참말로 못된 것일까 생각해 본다. 구보는 다음으로 당시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낙랑파라’로 향했다.

오후 두 시, 일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그곳 등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고 (...) 그들은 거의 다 젊은이들이었고, 그리고 그 젊은이들은 그 젊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기네들은 인생에 피로한 것 같이 느꼈다.

이곳에서 그들은 서로의 피로와 우울, 고독을 토로하며 얘기를 나눈다. 다방을 나온 구보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 고독을 피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경성역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온정을 느끼지 못한다. 사람들은 ‘40여 세의 노동자’를 더럽게 여기고, 병자를 꺼린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이 역시 병자 취급당할 수밖에.

광화문부터 종로 거리 구보하기

조선총독부 청사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광화문통 그 멋없이 넓고 쓸쓸한 길을 아무렇게나 걸어가며

구보는 광화문 거리를 걷고 있다. ‘광화문통’이지만 조선총독부 건물이 그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탓에 그곳에는 광화문이 없었다. 그가 그 거리를 걸으며 느낀 쓸쓸함은 복잡미묘한 것이면서도 그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게 했다. 패배자로, 병자로 내몰리고 그가 알고 있던 공간은 삭제됐기 때문이다. ‘전근대’의 인간인 구보가 있을 ‘전근대’의 산물이 없어진 것이다. 사회는 그를 몰아내고 공간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 속에서 구보는 철저한 외부인이었다. 현재는 총독부 청사가 헐리고 그 뒤에 자리하던 광화문이 모습을 드러냈고, 광화문 거리는 만인의 쉼터가 됐다. 기자는 ‘구보’가 이 거리를 걸으면 사회로부터 거부당할지라도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 쓸쓸함을 느끼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구보는 벗과 술을 마시고, 비가 오는 종로 네거리를 걷는다. 내일도 보자는 벗의 말에,

구보는 잠깐 주저하고, 내일, 내일부터, 내 집에 있겠소. 창작하겠소ㅡ.

“좋은 소설을 쓰시오.”

벗은 진정으로 말하고,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참말 좋은 소설을 쓰리라 (...) 오직 그 생각에 조그만 한 개의 행복을 갖는다.

구보는 다시 집으로 향한다. 그의 하루 속에 구체적인 변화는 찾아볼 수 없다. 여전히 실직자일 뿐이다. 또 도시 속에서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도시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는 자신을 고독과 우울로 빠지게 한 도시에 그대로 침잠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자신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을 찾는다.

이재훈 기자  ljh1109@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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