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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즐기다_영화] 로버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이하 로버트)가 고등연구소(IAS) 이사회의 초정을 받아 뉴지저주 프린스턴을 방문했을 때, 그는 이미 미국의 영웅이었다. 뛰어난 물리학자인 동시에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이기도 한 그와 같은 인물이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하지 않았더라면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은 훨씬 늦어졌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처사였다. 전후 미국에서 로버트는 가장 명망 높은 이론물리학자이자, 에너지 정책 분야에서 신뢰받는 자문역이었다.

고등연구소 이사 중 한 명이던 루이스 스트로스도 로버트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다. 루이스는 로버트를 프린스턴으로 초청해 고등연구소 소장직을 제의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감독은 이 짧은 만남 장면을 통해 ‘미국의 프로메테우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로버트의 비극적인 생애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루이스에게 연구소 내부 공간을 소개받은 후 로버트는 앞마당에서 산책 중이던 또 다른 석학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만나 대화를 나눈다. 멀찌감치 떨어져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루이스는 대화가 끝날 무렵 아인슈타인에게 다가가 그의 이름을 부르지만, 아인슈타인은 심란한 표정을 지은 채 루이스를 무시하고 지나간다.

실제로는 루이스와 아무런 관련 없는 대화였지만 루이스는 두 사람이 자신의 뒷담화를 했다고 짐작한다. 이후 일련의 사건을 거쳐 ‘로버트가 자신과 과학자들 사이를 이간질한다’는 피해망상에 빠진 루이스는 로버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내쫓기로 결심한다. 로버트는 평생을 미국에 충성했지만 ‘매카시즘’이라고 불린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 속에서는 공산당원과 친밀한 관계였다는 이유만으로도 경계의 대상이었다. 루이스는 사실과 허구를 교묘히 섞은 문건을 만들어 유출했고, 이로 인해 로버트는 정부로부터 정보 접근 자격을 박탈당한다. 로버트는 허위 사실에 반박하기는 했지만, 자신을 공격하는 세력을 향해 역공을 벌이지는 않았다. 그는 치욕스러운 모함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격하게 반발하지 않은 채 담담하게 주어진 시련을 받아들였다.

로버트는 그의 평전 제목이기도 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로버트를 인간에게 ‘불’을 선물했다는 이유로 제우스로부터 영원히 벌을 받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한 말이다. 로버트의 인생 여정을 되돌아보면 적절한 비유이긴 하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본인의 행동이 정의로웠다고 확신한 프로메테우스와 달리, 로버트는 평생을 양심의 가책에 시달려야 했다. 로버트는 아인슈타인과 나눈 대화에서 지구가 핵미사일로 뒤덮이는 환영에 시달리며 말했다. “온 세상을 멸망시킬 연쇄반응을 우리가 실현한 것 같아요.” 대사를 마친 후 클로즈업된 로버트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 로버트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니면 외로웠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기원 기자  qnal44@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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