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한 R&D 센터. 건물 입구부터 곳곳에 글귀가 보인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기술 = 지식 + 오감, 혁신 = 기술 + 영감’이다. 글귀의 뜻에 대해 고민하며 집무실에 들어서자, 직원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은 황철주 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 그가 걸어온 길에 비하면 찰나일 뿐이지만 그의 혁신과 도전이라는 일관된 가치관을 듣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공고부터 인하대 공대까지

황철주 회장의 삶은 매 순간 ‘더 나은 삶’을 추구한 발자취다. 어릴 적 가난했던 그는 빠른 경제활동을 위해 공업 고등학교를 졸업해 섬유 공장에서 일했다. 그가 일찍이 사회에 나가 느낀 것은 학벌의 중요성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보니 대학교 졸업자와 대우 차이가 크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렇게 전문대학교를 진학했죠.” 인하공업전문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다시금 전문대학교와 4년제 대학교의 대우 차이를 느끼고 인하대학교 전자공학과로 편입한다.

주성 엔지니어링을 만들다

당시 대학에 재학 중이던 황철주 회장은 현대전자(현 SK 하이닉스)에 입사한다. 그 후,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ASM에 스카우트 되어 근무하다 ASM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게 되고 주성 엔지니어링을 창업한다. 1993년, 아직 반도체 기업이 많지 않았지만, 그에겐 오히려 남들보다 한발 앞서 경쟁력을 갖출 기회가 됐다. “소프트웨어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수요가 있을 거라 예상했습니다. 쉽게 포화상태가 될 하드웨어와는 다르죠. 그래서 소프트웨어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으로 시작했습니다.”

직장인에게 창업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에게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존재했지만, 그는 도망보단 도전을 택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도전엔 두려움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그였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한 분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일수록 두려움을 느끼지 못해요. 도전이 두려운 건 당연한 거예요. 하지만 두렵다고 도망가면 성장할 수 없어요. 두려움을 극복하고 도전하는 게 더 나은 삶을 위한 첫 발걸음입니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주성 R&D센터

주성의 길은 혁신의 길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은 주성은 여전히 창업자인 황철주 회장이 운영하고 있다. 평생 더 나은 삶을 위해 일한 그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최고의 방법이 ‘혁신’이라 말한다. 이를 이해하려면 그의 지식, 기술, 혁신에 대한 정의를 알아야 한다.

“지식은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으면서 얻는 정보예요. 기술은 지식에 오감을 더한 것입니다. 지식을 가지고 현장에서 일하며 직접 깨달으며 쌓는 것들이 기술이죠. 우리나라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기술입니다. 그러나 이젠 기술만으로는 부족해요. 세상에 없는 기술을 만들어 내는 것이 혁신이죠. 세상에 없던 것이기에 그 가치는 무한합니다.”

기업과 기술자의 입장에서 설명한 혁신은 ‘세상에 없는 기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언뜻 공학 계열 학생에게만 적용되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쯤, 그가 한 마디 덧붙인다. “남들이 할 수 없는 걸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남들이 생각하지 않고 하지 않는 것. 세상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걸 남들보다 한발 앞서서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은 삶에는 경쟁력이 필요하다.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쟁자가 존재하지 않는 나만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그가 말하고자 하는 혁신이다.

주성이 걸어온 길도 혁신의 길이다. 지난 30년간, 주성 엔지니어링이 보유하게 된 특허는 약 3,000개, 4일에 한 번꼴로 새로운 기술(혁신)을 세상에 선보인 셈이다. 그중 대부분은 황철주 회장의 손을 거쳤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날도 그는 언제든 연구실에 들어갈 수 있는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그가 혁신을 어떻게 여기는지가 그대로 배어 나왔다.

주성에 위기가 닥쳤을 때도 주성과 황철주 회장은 혁신이라는 정공법으로 도전하는 것을 선택했다. 2000년대 초반, 주성은 삼성전자와의 계약이 불발되고 큰 위기가 닥쳤지만 신기술 개발을 통해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와 계약하며 반등의 기점으로 삼았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혁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주장한다.

“누구에게나 위기는 와요. 중요한 건 어떻게 맞서냐는 거죠. 예나 지금이나 주성은 신기술 개발, 즉 혁신이 경쟁력입니다. 어려움 또한 혁신으로 극복했어요.”

R&D분야에 학벌 무관 채용

혁신을 주요 가치로 내세우는 만큼 주성은 R&D(연구개발)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R&D 재투자, 전체 임직원 수의 절반이 넘는 R&D 임직원, 용산 R&D센터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혁신을 위해 노력한다. 그중에서도 놀라운 것은 R&D분야 신입사원 채용에 전공과 학벌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자, 인문 계열 졸업자를 가리지 않고 채용하고 있다. 신기술을 개발하는 R&D분야인 만큼 학벌이 어느 곳보다 중요시되는 통념과는 정반대의 생각이다.

“대학에서 배우는 건 지식이에요. 이제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됐죠. 하물며 지식을 갖춰서 온다고 한들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지식은 채용 후에도 갖춰갈 수 있어요. 중요한 건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하냐는 거죠.”

그는 지식에는 공유의 철학이 있다고 말했다. 책을 읽거나,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은 누구나 받는 것이라는 뜻이다. 지식은 같은 내용을 학습하기에 차별화될 수 없다. 그러나 주성에서 요구하는 능력인 기술과 혁신은 차별화에 목적을 두고 있다. 그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기자 또한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차별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당장에라도 면접을 통과하고 채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혹자는 실무지식 없이 어떻게 연구개발을 할 수 있냐 질문한다. 이에 주성은 지식이 부족해 생기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매일 아침 용산 R&D센터에선 회의를 열어 목표를 설정하고 현재 상태를 점검하며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한다. 그에 따르면, 이 같은 방식을 적용하니 전공자와 비전공자 간 능률 차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지식이 경쟁력이 아닌 사회에서 대학생이란

황철주 회장은 대학과 학벌을 그 자체로 경쟁력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아닌, 앞으로의 삶을 설계할 밑바탕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더욱 지식의 가치가 낮아지겠죠. 우리는 대학을 성공의 지표가 아닌 그 기초를 마련하는 곳이라 생각해야 해요. 하지만 아직 대학은 수십 년 전의 지식 교육기관에 머물러 있으니 안타깝죠. 공대생 중엔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많은데, 박사 학위 자체가 아닌 그 과정에서 경쟁력을 키워야 해요.”

그는 성공하기 위한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대학생들에게 인간관계를 쌓으라고 조언한다.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를 쌓아야 해요. 사제 관계도 좋고, 동기나 선후배도 좋아요. 서로에게 배우고 도움을 주는 관계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이 대학교가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쌓은 인간관계가 훗날 자신만의 경쟁력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줄 거예요.”

혁신 결국은 행복을 위한 것

황철주 회장은 행복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혁신하라 조언한다.

“우리가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더 잘 살려고, 더 행복하고 나은 삶을 위해서죠. 그걸 위해서 우리는 경쟁력을 갖춰야 하고 끊임없이 일해야 합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수십 년간 남들보다 한발 앞서 달려왔던 그는 아직도 누구보다 혁신을 외치며 남들보다 앞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성은 행복을 만드는 곳이고, 가정은 행복을 즐기는 곳이다!’ 주성 엔지니어링의 모토다. 공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의 시선을 극복하려던 그는 이제 사회의 기준을 만들어 가는 위치가 됐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의 가치관은 변함이 없다. 황철주 회장의 도전은 오늘도 현재진행 중이다.

청년들이여 끊임없이 혁신하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하재윤 기자  jim_ha@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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